"쓰고 싶은 것이 무궁무진한데, 빨리 죽을까봐 겁이 납니다."
27년째 서울 중동고에서 철학교사로 재임하면서, 동시에 철학 교양서만 무려 20권을 낸 안광복(53) 교사. 그가 이번에는 현대 철학 입문서로 돌아왔다. 알프레트 아들러, 자크 라캉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 26인을 선정해 그들의 주요 사상과 핵심 개념을 실생활에 빗대어 알기 쉽게 풀어낸 책 '처음 읽는 현대 철학(어크로스 발행)'을 최근 출간했다. 안 교사를 23일 전화로 만났다.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하면 쉽게 떠오르는 고대의 사상을 익히기도 쉽지 않은데 왜 '현대 철학'을 알아야 할까. 안 교사는 경쟁이 치열하고 생존이 절박해져 멀리 내다볼 수 없는 현대 사회를 '정신적 근시' 상태로 본다. 그 속에서 개인은 그저 적응하고 있을 뿐, 더 나아가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 그때에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철학'이다. "흔히 현대 철학은 너무 난해하다고 해요. 현대 사회의 문제가 난해해졌기 때문에, 이를 푸는 해법도 어려워진 거죠."
책은 그래서 현대 철학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예컨대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명명한 '위험사회'와 그 사상을 설명하면서, 코로나19나 기후 위기 같은 현재적 사례를 끌어오고 더 나아가 성찰하는 개인이 일상 속에서 행할 수 있는 실천을 제시하는 식이다. 멀게만 느껴지는 존 롤스의 '정의론'도 한국 사회의 금수저 담론으로 명쾌하게 풀어낸다. 마셜 매클루언처럼 엄밀한 기준으로는 '철학가'에 포함되지 않는 인물도 꽤 있다. 학계에서 철학자로 보지 않더라도 사상적으로 현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면 함께 수록됐다.
그는 스스로를 철학 연구자가 아닌 '임상 철학자'라 부르는 것을 즐긴다. 철학은 문명의 기초를 이루는 정신적인 기반이요, 일상에서 철학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실천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철학이 우리의 삶을 정말 바꿀 수 있을까. 안 교사는 "아무리 챗GPT 같은 것이 나오는 세상이라도 정신의 근력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사회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은 무엇인지, 진리란 무엇인지'라는 인생의 근원적 물음을 짚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철학이 일상과 결코 멀지 않다고도 설명한다.
하나, 바쁜 직장인에게 철학공부까지 요구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 자신 역시 1996년부터 직장 생활을 하고 있기에 그 마음을 잘 안다고 덧붙인다.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책, 그것도 철학책은 읽기 싫죠.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바쁜 시간을 빼내서 큰 부담 없이 철학할 수 있는 책을 쓰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는 철학을 대중에게 쉽게 소개하기 위해 오후 8시에 취침해 새벽 2시부터 3시간 30분 동안 읽고 집필하는 생활을 30년 가까이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쓰고 싶은, 가슴 뛰는 주제가 많다는 안 교사에게 오늘날 함께 사는 시민들이 왜 철학을 삶에 들여야 하는지 물었다. "인생의 '작전타임'으로 철학만 한 게 없어요. 계속 뛰기만 해서는 엉뚱한 곳으로 갈 수 있거든요. 뛰다가도 가끔 멈춰서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철학이 바로 그런 작업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