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의 기소에도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이 22일 이 대표의 대장동·위례 개발사업 및 성남FC 후원금 의혹에 대한 검찰의 기소를 '정치탄압'으로 규정하고, '당헌 80조'의 직무정지 조항을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장 거취에 대한 불확실성은 털어냈지만, 검찰의 추가 기소와 잇단 재판으로 향후 이 대표의 정치적 부담은 가중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당무위원회의를 열어 이 대표 기소를 부당한 '정치탄압'이라고 판단한 최고위원회의 유권해석을 인정했다고 김의겸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당헌·당규의 해석 권한을 갖는 당무위는 지도부와 시·도당위원장, 시·도지사 등 80명으로 구성돼 있다. 정치탄압 여부를 투표한 결과, 회의 참석자와 서면 의견서를 합쳐 총 69명이 "당헌 80조 3항의 적용에 동의한다"고 의견을 냈다. 반대 의견은 없었다고 한다.
김 대변인은 "정치탄압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것은 혐의가 있고 없고가 아니라, 정치탄압의 의도가 있느냐 없느냐"라며 "그런 점들이 고려돼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럽의회에서도 오래된 사건이거나 공정성과 균형성이 확연히 무너진 경우 등 '정치탄압의 징후'가 있을 경우 검찰의 잘못된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당무위는 지난달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기동민, 이수진 의원에 대해서도 이 대표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들은 각각 당에서 정책조정위원장, 원내대변인을 맡고 있다.
당헌 80조 1항은 사무총장이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에 관한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하고, 윤리심판원에 조사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단,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당무위 의결을 통해 따로 결정할 수 있다(80조 3항)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이날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 대표 등 3인에 대해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당무위에 올렸다. 이 대표는 최고위에서 "검찰이 온갖 압수수색과 체포영장 쇼를 벌이며 정치적으로 활용하다가 정해진 답대로 기소했다"며 "이제 '검찰의 시간'이 끝나고 '법원의 시간'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무위 결정을 두고 비이재명계에선 불만이 나왔다. 한 비명계 중진 의원은 "예외 조항이 당헌 80조 전체를 형해화했다"면서 "국민들 앞에서는 민주정당을 외쳐놓고 돌아서서는 기만한 '쇼윈도' 행태를 보였다"고 꼬집었다. 김종민 의원도 BBS 라디오에서 "근본적으로 방탄정당이 안 되게 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당무위 결정이 검찰의 기소 후 약 7시간 만에 속전속결로 나온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당 총무조정국은 이날 당무위원들에게 당일 회의 사실을 공지하며, 불참 시엔 서면을 통해 실명으로 의견을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당대표 거취를 결정하는 중대 사안을 기소 몇 시간 만에 서면으로 하는 게 맞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두고 지도부가 비명계의 반발을 의식해 당무위 개최를 밀어붙였다는 시각이 많다.
이 대표는 한숨을 돌린 셈이 됐지만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백현동 개발 특혜,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으로 검찰이 추가 기소할 가능성이 크고, 당헌 80조 해석 논쟁은 언제든 재점화할 수 있다. 게다가 격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정상적으로 대표직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불식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반발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이 대표는 대선 패배 직후부터 사법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참호전을 준비했다"며 "당무위의 '당직 정지 예외' 적용이라는 웃지 못할 희극의 첫 수혜자도 본인이 됐다"고 비판했다. 김기현 대표는 "이 대표에 대한 혐의가 입증돼 기소된다는 뉴스를 봤다"며 "더 이상 민주당 대표를 수행할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