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반도체나 전기자동차 등 ‘국가전략기술’ 분야 시설에 돈을 쓰는 대기업이 많으면 투자 금액의 25%까지 법인세를 깎을 수 있게 됐다. 반도체를 앞세운 정부 등 여권의 국가전략기술 투자 세액공제율 상향 추진에 애초 시큰둥하던 더불어민주당이 막판 수혜 대상에 수소와 미래차를 집어넣고 못 이기는 척 정부안에 합의해 주면서다. 결과적으로 대기업을 향한 선심을 여야가 주고받은 셈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는 22일 전체회의를 열어 국가전략기술 투자 세제 지원 강화 등이 취지인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 일명 ‘K칩스법’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30일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정부가 틀을 잡은 개정안의 핵심은 국가전략기술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의 대폭 상향이다. 개정안이 최종 의결되면 공제율이 대기업ㆍ중견기업의 경우 현행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올라간다. 직전 3년간 연평균 투자액 대비 올해 투자 증가분에 대해서는 10%의 추가 공제 혜택도 주어진다. 증가분 추가 공제는 올해 한시적이다.
예컨대 2020~2022년 연평균 40조 원을 반도체 시설에 투자하던 삼성전자가 올해 50조 원을 같은 곳에 썼다고 가정하면 40조 원의 15%인 6조 원과 10조 원의 25%인 2조5,000억 원을 합친 8조5,000억 원이 법인세에서 빠지게 된다. 공제율이 그대로였다면 감면됐을 세액이 4조 원인 만큼, 법 개정 덕에 두 배가 넘는 세금을 더 아끼게 되는 것이다.
애초 정부안에서 바뀐 것은 국가전략기술 범위다. 현행 반도체ㆍ이차전지ㆍ백신ㆍ디스플레이에 수소와 전기차ㆍ자율주행차 등 미래형 이동수단이 추가됐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국가전략기술 범위 확대가 목적인 여야 의원 발의 법안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결과라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공제율을 수용할 테니 공제 대상을 확대하자고 정부에 역제안한 쪽은 민주당이었다.
이에 따라 ‘재벌 특혜 아니냐’는 소수 야당과 시민사회의 의심을 “세제 지원이 촉진한 대기업 설비 투자 확대의 혜택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논리로 외롭게 방어하던 정부를 잠자코 있던 거대 야당이 거들고 나선 모양새가 됐다. 전기차 설비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는 현대차가 얼떨결에 민주당 덕을 본 셈이어서다.
감세가 세수 결손을 부를 게 틀림없다며 여권에 각을 세우던 민주당의 기존 입장은 이번 거래로 아예 무색해졌다. 민주당 요구로 수소ㆍ미래차 등이 수혜 대상에 포함되면서 내년 세수 감소 규모가 원래 정부 추산액인 3조3,000억 원에서 적어도 수천억 원 늘게 생겼기 때문이다. 기재위 야당 간사인 신동근 민주당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조세 정책적 측면보다 국가전략산업 지원책이라는 측면에서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재위를 통과한 조특법 개정안에는 개인 투자용 국채 이자 소득 및 하이일드 펀드(비우량 채권을 일정 비율 이상 편입한 고위험ㆍ고수익 펀드)에서 발생한 이자ㆍ배당 소득을 저율(14%) 분리 과세하는 특례 조항도 신설됐다. 금융 소득의 경우 연간 2,000만 원 이상이면 초과분을 다른 소득과 합산해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게 세법 원칙인데(종합 과세), 2024년까지 국채의 경우 1인당 매입액 2억 원, 펀드는 1인당 투자금 3,000만 원까지 특례 대상으로 인정해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게 개정 취지다.
공공주택사업자 등 법인이 공익 목적으로 주택을 3채 이상 보유한 경우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매길 때 중과(重課) 누진세율(0.5~5.0%)이 아니라 기본 누진세율(0.5~2.7%)을 적용한다는 내용의 종부세법 개정안도 이날 기재위를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