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면 내년 총선 ‘D-1년’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공천룰을 선거 1년 전에 확정 지어야 한다는 당헌대로 공천제도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주 전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를 구성한 국민의힘은 순차적으로 사고당원협의회 인선을 본격화할 조짐이다.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한 중대한 분기점이다. ‘정권 중간평가’인 만큼 여당은 정부의 국정수행을 최우선 뒷받침하며 총선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반면 당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민주당으로선 구심력 유지 차원에서 일찌감치 총선대비에 불을 댕기는 모양새다. 내년 4월 10일 총선을 1년 앞둔 정치권의 관심과 전망을 짚어본다.
여의도에선 검사 출신 20~30명이 여당 공천자로 대거 수혈된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나돈다. 수도권 121석 중 국민의힘 의석수는 19석에 불과하다. 원외위원장이 100명이 넘어 정치신인을 투입할 자리가 넘쳐난다. 현재 용산 대통령실은 물론 국정원 기조실장, 금융계 실세까지 모두 검사 출신이다. 국가 요직에 검사들을 전면 배치한 윤 대통령이 국회에도 친윤 검사그룹을 포진시킨다는 전망이 주류다.
비영남권 친윤계 의원은 22일 본보 통화에서 “대통령이 검사 출신들을 내려보냈는데 우르르 떨어지면 큰일 아니냐”며 “영남·충청이 고향인 경우를 제외하면 수도권에서 작년 대선과 지방선거 득표율이 높아 당선 가능성이 있는 곳에 최소 20여 명이 투입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다만 국민적 이미지가 호의적이라 볼 수는 없어 중화하고 용해시켜 어떤 식으로 브랜드화할지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대통령과 동질감을 공유하는 검사 코어그룹이 형성되는 건 불가피하더라도 선거전략엔 부담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민주당 수도권 출신 의원은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도 윤석열 대통령의 스타일상 ‘검사군단’을 반드시 내보낼 것”이라며 “범죄와의 전쟁이나 부정부패 척결에 공이 큰 엘리트 검사군을 발굴해 띄우지 않겠냐”고 예상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많은 숫자가 아니더라도 상징성이 큰 데다 홍준표의 모래시계 검사 시절이 아니어서 기득권 직업군으로 비칠 것”이라고 짚었다. 박 교수는 “긍정적으로 보면 법치주의 강화 메시지인데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의미’(Rule of law)보다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로 오인돼 유권자를 설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역설적으로 검사전성시대 마감을 앞당길 위험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미 여당을 친윤 지도부로 완성한 윤 대통령이 ‘검찰공화국’ 프레임에 말려들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없지 않다.
국민의힘과 달리 169석 현역이 즐비한 민주당으로선 “대규모 영입집단이 들어올 공간이 적다”(서울지역 의원)는 딜레마가 있다. 전략적으로 신진세력을 선보여야 하지만 발굴할 집단이 마땅치 않다는 고민도 있다. 민주당의 전략통 의원은 “여당이 공천개혁에 나설 경우 우리 쪽은 직업군으로서 수혈할 데가 바닥난 상태다. 지난 20년간 운동권 출신, 윤미향 의원 사태가 있던 시민단체 쪽, 기존 민변 그룹 같은 공급지가 더 이상 좋은 이미지로 안 먹힌다. 국민은 586들을 기득권으로 본 지 오래됐다”고 토로했다. 이 의원은 “민주진영에 ‘너희는 돈 벌어서 누구 월급이라도 줘봤냐’는 공격이 많았다. DJ 때 과학기술 IT전문가를 일부 영입하기도 했지만 지금 남은 부분은 민생을 알고 맨손으로 성취를 맞본 제3섹터 스타트업 창업자 그룹이 될 것”이라며 “미국에서 실리콘밸리가 아직도 기회의 땅이고 한국도 경제생태계에서 성공 롤모델 집단은 이쪽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작 민주당 일각에선 ‘올드그룹’ 복귀에 대한 경계도 나온다. 주요 당직을 맡은 의원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을 비롯해 국민의당 출신 전직 의원들을 대통합 차원에서 복당시킨 데다 작년 지방선거 때 3선 연임제한자 및 군수, 시장, 구청장 낙선자 그룹이 모두 총선에 뛰어들어 전 지역구가 난타전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재명 대표가 ‘시스템 공천’을 내세운 배경과 무관치 않은 셈이다. 특히 출마가 예상되는 전직 의원 그룹에 고연령대가 많아 ‘70세 이상 원로들은 컷오프시켜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현역 의원들의 연령대가 오히려 젊다는 평가를 무기로 격렬한 내부 투쟁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정치권에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총선 간판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친윤계 의원은 “김기현 대표가 극복해야 할 과제지만 한 장관이 출마해 바람을 일으킬 가능성이 120%라고 본다. 전쟁에서 적군의 유인사격을 끌어내듯 야당의 예봉을 정면에서 맞설 다른 카드를 찾기 힘들다”고 기대했다. 이 의원은 “실제 서울의 모 지역구 배정론이 구체적으로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지역은 물의를 일으켰던 모 의원의 선거구다.
한 장관이 뛰어들면 총선의 주목도가 급상승할 것이다. ‘정권의 2인자’로 인식되어서다. 총선을 거치면 노태우 정권 때 여당 내 사조직 월계수회를 거느리며 최고 실세였던 박철언 전 정무장관에 비견될 만하다. 강단 있는 검사 출신인 점도 같다. 서울의 한 민주당 의원은 “‘윤 정부 황태자’인 한 장관이 강남벨트에 나오면 위험을 회피한 선택이라 대선주자로 힘을 받기 어렵다”며 “만에 하나 여당에 험지인 우리 지역에 한 장관이 나올 수 있다는 각오로 총선을 대비 중”이라고 흥미로운 가정을 했다.
총선 역할론은 여권의 차기 경쟁과 직결된다. 국민의힘 고위당직자는 “여당은 의석 숫자싸움 외에 자파 후보자를 얼마나 공천시키느냐가 중요하다”며 “특히 호남은 출마자가 당협위원장을 유지할 수 있어 대선후보 경선전쟁이 시작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 장관의 거취가 양날의 칼이 될 거란 평가도 많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흥행요소가 될지 ‘검사프레임’이 잡혀 걸림돌일지 알 수 없다”며 “그동안의 수사 성과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게 돼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총선 1년 전 각종 지지율이 향후 예측의 기준점이 되기도 한다. 박 교수는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정권견제론이냐, 야당심판론이냐를 물었을 때 4~5%, 5~6% 내외로 정권견제론이 조금 높게 나오지만 양쪽 다 절반은 못 넘긴다”고 분석했다. 총선에서 여야 순위는 가려지지만 어느 쪽도 과반(150석)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의 수가 거론되는 것이다. 이때 한쪽이 압승했다고 여길 마지노선은 140석쯤 될 것이다.
여야가 공천 내분을 겪어 동시 분열하거나 4당 체제로 총선을 치르는 사태도 부쩍 언급된다. 친윤계 의원은 “이 대표가 계속된 사법적 흠집으로 잔매에 멍들고 가랑비에 옷 젖고 있다. 민주당 친명과 비명 간 분열은 거의 필연적”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선 1996년 15대 총선 모델이 언급된다. 양당 모두 실패한 케이스다. YS 임기 말 신한국당이 139석으로 승리했지만 JP가 창당한 자민련이 TK지역 일부까지 잠식했다. 3당 합당에 따른 여권의 반호남동맹이 깨졌기 때문이다. 야권도 DJ의 국민회의와 통합민주당으로 갈려 수도권 지지표가 분산됐다.
윤 대통령과 친윤 주류가 총선을 앞두고 자신이 내친 이회창 전 총리를 끌어안은 YS와 달리 갈 경우, 국민의힘 개혁보수층이 이탈하는 상황도 빼놓을 수 없다. 이와 함께 ‘비호감 대선연장전’ 구도가 계속되는 한 제3지대 요구가 분출할 수 있겠지만 ‘안철수 실험’ 좌초로 이를 담아낼 그릇이 없다는 건 한계다. 신 교수는 다만 “오랫동안 충청권을 대변하는 지역 정당이 공백인 조건에 변화가 생긴다면 총선 직전 선거구도가 돌변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