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채권 회전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크레디트스위스(CS) 매각 등 잇단 악재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증폭되자 대표적 안전 자산인 채권거래마저 자취를 감춘 것이다.
2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21일까지 국채, 지방채, 회사채 등 전체 채권(장외) 거래량은 액면가 기준 280조1,014억 원, 발행 잔액은 2,605조7,753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를 통해 산출한 전체 채권 회전율은 10.75%였다. 회전율은 발행 잔액 대비 거래량으로 계산하는데, 높을수록 투자자 간 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뜻이다.
3월 말까지 시간이 남기는 했지만 10.75%의 월간 회전율은 금투협이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6년 1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직전 최저치인 지난해 10월(12.06%)과 비교해도 1.31%포인트 낮다.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 전반이 얼어붙었던 때보다 거래가 더 부진해진 셈이다. 채권 종류별로 봐도 흐름은 비슷하다. 이달 국채 회전율은 13.24%로 14~21%였던 최근 1년 수준을 하회했고, 은행채와 회사채도 전반적으로 회전율이 떨어진 모습이다.
최근 채권 금리가 방향성을 잃고 널뛰자 투자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8일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상원 청문회에서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준비가 돼 있다”며 매파적 발언을 쏟아내자 국채 3년물 금리는 하루 만에 0.129%포인트 치솟았다. 이후 SVB 파산 여파가 덮친 13일 0.268%포인트 추락했다가, 사태가 일부 진정된 15일 0.092%포인트 오르고, 20일 크레디트스위스 경영 위기가 부각되면서 다시 0.151%포인트 하락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김상훈 하나증권 연구원은 “레고랜드 사태 때는 채권 금리가 위로만 밀렸는데, 지금은 방향성이 위, 아래 다 열려 있다”면서 “이처럼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에선 운용역들이 거래 포지션을 많이 가져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 발표를 앞두고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도 강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미국 기준금리 향방이 정해지면 채권 회전율은 다시 오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김 연구원은 “FOMC 결과 발표로 단기 방향성은 잡히겠지만, 은행발 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만큼 연준 입장에서도 향후 정책 기조를 명확하게 제시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안개가 걷히기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