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과의 산업 교류를 활성화하면서도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독일의 '줄타기 외교'가 아슬아슬하다. 독일 연방정부 장관이 26년 만에 처음으로 '미수교국' 대만을 공식 방문한 것이다. 반도체 생산 강국인 대만과의 협력 강화가 목적이었지만, 중국의 거센 반발이 명약관화했던 만큼 독일은 외교적·정치적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22일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베티나 슈타르크 바칭거 독일 교육연구부 장관은 1박 2일 일정으로 전날 대만을 찾았다. 1997년 귄터 렉스로트 당시 경제부 장관 이후 독일 현직 장관이 대만을 방문하는 건 26년 만의 일이다. 바칭거 장관은 "큰 기쁨이자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고, 그를 맞은 우청총 대만 과학기술부 장관도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독일 교육부와 대만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21일 '과학기술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하자'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했다. 핵심 기술·자원에 대한 공급망의 안정적 확보가 전 세계의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독일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분야를 선도하는 대만과의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와 독일 동부에 공장을 설립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수소 에너지 △배터리 개발 등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고 유로뉴스는 보도했다. 바칭거 장관은 "민주적 가치와 투명성, 개방성, 상호성, 과학적 자유를 기반으로 협력을 강화하자"고 대만 측에 말했다고 DW는 전했다.
중국은 역시나 분노를 표했다. 중국 외교부는 바칭거 장관의 대만 방문에 대해 "대만 분리주의 세력과의 교류를 중단해야 한다. 우리는 중국의 주권과 영토의 보전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다"라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대만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는 중국 입장에선 '독일이 대만을 독립 주권국가로 인식한다'는 의미로 보였기 때문이다. 2개월 전 독일 의회 고위 대표단이 대만을 방문하는 등 최근 들어 독일이 부쩍 대만과 밀착하고 있는 상황도 중국엔 불편하다.
사실 독일도 중국의 이 같은 반응을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대만을 방문하되, 중국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 방편을 택했다. 바칭거 장관의 대만 방문에 앞서 독일 교육부는 "독일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고 재확인했다. 바칭거 장관은 대만 일정도 과학·연구·교육 관련 당국자들과의 면담만 잡았다. '실무 방문'임을 부각하며 로키(Low Key) 행보를 보인 셈이다. 중국 외교부의 비판 논평에도 독일 외교부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