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새내기들이 합격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두 가지다. 등록금 납부와 '에브리타임' 가입이다.
에브리타임은 대학생들의 페이스북으로 통하는 인터넷 게시판이다. 2010년 이전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는 생소하지만 그 이후 학번들에는 익숙한 대학 생활의 필수품 같은 서비스다. 2021년 말 기준 전국 대학생 287만 명. 에브리타임의 월간 이용자 수 287만 명. 사실상 모든 대학생이 쓴다는 뜻이다.
대학생들은 거의 매일 에브리타임에 접속해 각자 수업 시간표와 점심 메뉴를 확인하고 학교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한다. 특히 수강 신청 기간이면 에브리타임은 난리가 난다. 학생들이 올린 강의평을 참고해 수강 신청을 하기 위해서다.
반면 그늘도 있다. 직장인들의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처럼 확인되지 않은 각종 소문이 난무하면서 종종 분란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에브리타임을 써 본 대학생들은 편리함 때문에 '대학 생활의 포털'로 꼽는다. 이 서비스를 만든 주인공은 신생기업(스타트업) 비누랩스의 김한이(33) 대표다.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김 대표를 만나 독특한 창업기와 서비스 확대 계획을 들어봤다.
김 대표의 창업 과정은 페이스북을 만든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와 닮았다. 하버드대학에 다니던 저커버그가 친구들과 수다를 떨려고 만든 페이스북처럼 김 대표는 연세대 컴퓨터과학과에 다니던 2010년 수강 신청을 편하게 하려고 시간표 작성 프로그램 에브리타임을 만들었다. "개인적인 목적이었죠. 원하는 과목을 들으려면 인터넷이 빠른 PC방에서 수강 신청을 해야 했는데, 이를 빠르고 편하게 하려고 만들었어요. PC방 컴퓨터에 설치해 사용하면서 친구들 사이에 퍼졌죠.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면 알아서 시간표를 작성해 줘요. 표 계산 프로그램 '엑셀'로 작업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더러 누락되기도 했는데 이런 불편이 사라졌죠."
에브리타임은 입소문을 타고 금세 다른 대학까지 번졌다. "처음에는 같은 학교 학생들만 썼는데, 다른 대학에서 잇따라 적용 요청이 들어왔어요. 2015년 비누랩스를 창업했을 때 20개 대학까지 늘었죠. 지금은 397개 대학이 사용해요."
적용 대학을 늘리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대학별 과목을 일일이 조사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야 한다. "재미 삼아 시작했는데 일이 커졌죠."
비슷한 시간표 프로그램은 당시 여럿 있었다. 그중 에브리타임이 천하를 통일한 것은 간결함과 편리함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과목을 정하면 알아서 배치되는 등 자동화 기능이 차별화 요소였어요. 작은 디테일이 큰 것을 변화시킨 사례죠."
결국 김 대표는 생계유지를 하면서 에브리타임을 계속 지원하기 위해 창업했다. "어쩔 수 없이 창업했죠. 다른 직장에 취직해 회사를 다니면서 프로그램을 유지 보수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친구들끼리 2,000만 원을 모아 시작했어요."
사명은 창업 당시 에브리스튜디오로 지었다가 2016년 비누랩스로 바꿨다. "사명에 들어간 비누는 대학을 뜻하는 영어단어 UNIV를 뒤집었어요. 소프트웨어로 대학 생활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을 담았죠."
이후 에브리타임은 시간표 작성뿐 아니라 다양한 기능을 갖게 됐다. 강의 평가와 강의 정보를 제공하고 같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끼리 의견을 주고받는 게시판, 학교별 게시판이 생겼다. "시간표 작성과 각종 의견을 주고받는 게시판이 가장 인기예요."
덕분에 이용자도 빠르게 늘었다. "누적 가입자가 618만 명, 지금까지 학생들이 만든 시간표가 누적으로 3,600만 개입니다. 23학번 새내기 가입자도 42만 명을 넘어서면서 에브리타임 앱이 최근 애플 앱스토어 소셜 부문 1위에 올랐어요."
김 대표는 에브리타임의 인기 비결로 중독성을 꼽았다. "한번 사용하면 계속 사용하게 돼요. 수강 신청부터 시험, 학교 축제와 MT, 오리엔테이션 등 각종 학교 행사부터 시시콜콜한 개인사까지 다 올라와요. 신입생들은 선배에 대한 예의 등 잘 모르는 궁금증을 많이 물어요. 이런 것들을 미리 알고 가면 학교생활이 편해지죠."
그 바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에도 인기를 끌었다. "대면 접촉을 하지 않으면서 대학생들이 학교 소식을 듣는 유일한 창구가 됐죠. 그때 이용자가 많이 늘었어요."
기본적으로 에브리타임은 재학생 인증을 거쳐야 사용할 수 있다. "시간표 작성만 이용하면 인증이 필요 없지만 게시판에 글을 쓰고 강의 평가를 보려면 학교 이메일 계정과 학생증을 촬영해 보내는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해요."
학생증 촬영 인증은 운영팀 직원들이 일일이 눈으로 확인한다. 이를 위해 전체 직원 약 80명 가운데 절반이 운영 인력이다. "입학 때 인증이 많이 몰리죠. 그래도 하루면 인증이 끝나요."
그렇다고 재학생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졸업생 게시판이 따로 있어서 졸업생들도 많이 이용한다. "사회 초년생들이 주로 회사 이야기를 하죠. 회사 정보를 올려서 취업을 앞둔 후배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거꾸로 학교 소식도 들어요."
비누랩스는 에브리타임 외 '캠퍼스픽', '대학백과', '학생복지스토어' 등 네 가지 사업을 한다. 캠퍼스픽은 공모전, 동아리, 스터디 등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연합동아리처럼 다른 대학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능이 특징이다.
대학백과는 대입 준비생들을 겨냥한 서비스다. "대학생과 고교생을 연결해 주는 서비스죠. 고교생들이 진학하려는 학교에 대한 질문을 게시판에 올리면 대학 재학생들이 답을 올려요. 고교생들은 대학백과로 익숙해지면 대입 지원서를 쓰면서 에브리타임을 사용하죠."
학생복지스토어는 전자상거래 사업이다. 기업들과 손잡고 대학생들에게 필요한 상품을 할인 판매한다. "200개 업체가 입점해 노트북, 태블릿, 소프트웨어, 화장품, 간식 등 학생들에게 필요한 상품을 할인 판매하죠. 학생증을 인증하면 할인가로 살 수 있는데, 협력사인 애플 제품의 경우 10% 이상 할인받을 수 있어요."
2017년 시작한 학생복지스토어는 회원 수 125만 명, 월간 이용자 100만 명에 이른다. "다른 곳에서 사는 것보다 저렴해 매년 거래액이 50%씩 뛰고 있어요."
관건은 돈을 벌기 위한 수익 사업을 만드는 일이다. 에브리타임은 많은 게시판 서비스가 그렇듯 광고가 주요 수입원이다. 학생복지스토어는 자회사 유니브스토어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전자상거래 매출이 자회사 매출로 잡힌다.
김 대표는 광고에 의존하는 매출을 확대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설문조사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 "대학생 대상의 설문조사를 하고 싶은 곳에서 돈을 받고 조사를 진행하는 사업이죠. 대부분 대학생이 모여 있어서 빠르게 설문조사를 진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교육 사업도 검토 중이다. “각종 공모전이나 취업 등 대학생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주문형 비디오(VOD)로 알려주는 등 다양한 교육사업을 검토 중입니다. 올해 안에 시작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올해 매출을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이다. 김 대표는 매출과 영업이익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매년 성장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광고 매출이 전년 대비 70% 성장했어요. 자회사에서 제공하는 전자상거래 거래액도 전년 대비 50% 늘었죠."
다행히 매년 흑자를 내고 있어서 창업 이래 투자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 매년 흑자가 나고 있어요. 창업 이래 지금까지 생존에 초점을 맞춰 회사를 운영하면서 투자를 받지 않고 버텼어요. 흑자를 내려고 외부 주문을 받아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주는 일도 했죠."
그렇다고 투자 창구를 닫은 것은 아니다. "아예 외부 투자를 받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죠. 다만 아직은 시기상조로 봐요. 나중에 필요하면 받아야죠."
유리한 점이 있다면 에브리타임의 압도적 이용률 덕분에 추격할 경쟁사가 없다는 것이다. "게시판 서비스는 만들기 쉬워도 사람을 모으는 것이 힘들어요. 선점 효과가 커서 후발 주자가 따라오기 힘들기 때문에 경쟁을 우려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할 수는 없다. 김 대표는 인력도 늘리고 다양한 기능을 추가할 생각이다. “대학생들에게 필요한 많은 기능을 계속 추가할 계획입니다. 이용자의 편의성을 고려해 에브리타임에 붙이거나 별도 앱으로 만들 수 있죠. 그렇지만 에브리타임을 슈퍼앱으로 만들 생각은 없어요."
여기 맞춰 올해 채용을 늘릴 계획이다. "지난해 채용이 전년보다 2배 이상 늘었어요. 올해도 채용을 확대해 많이 뽑을 생각입니다."
끝으로 대학생 시절 창업한 그에게 학생 창업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웬만하면 학생 창업은 하지 마세요. 직원이 몇 명이든 책임지고 월급 주는 게 쉽지 않아요. 대표는 책임의 무게가 달라요. 지난한 과정을 버텨낼 체력과 경험이 없으면 많이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