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 "강제징용·위안부 회복청구권에 소멸시효 적용 안돼"

입력
2023.03.21 11:35
신우정 전주지법 군산지원장 이달 기고한 논문서
"강제징용·위안부는 노예금지 등 강행규범 위반"
"이탈 불가성 핵심... 소급 적용되고 소멸시효 없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회복청구권에는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현직 판사 주장이 나왔다.

2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신우정 전주지법 군산지원장은 이달 법정책 학술집 '사법'에 기고한 논문 '강행규범과 시제법-강제징용·위안부 사안을 중심으로'에서 강제징용·위안부 문제의 강행규범 위반 여부와 이에 대한 회복청구권 소급 적용 문제를 다뤘다. 신 지원장은 논문에서 "가해자인 일본 측의 두 강행규범 위반에 따른 국제법상 회복 책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강행규범이란 국제사회의 근본가치를 법적으로 구체화시킨 국제법상 최상위 규범이다. 구성원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어길 수 없는 '이탈 불가성'을 핵심으로 한다. 신 지원장은 논문에서 강제징용·위안부 사건이 '노예 금지'와 '인도에 반하는 죄 금지'라는 두 강행규범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2012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처음 인정했다. 이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8년 전범 기업인 일본제철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피해자 유족들의 소송이 이어졌으나, 하급심 법원들은 소멸시효 도과 여부를 놓고 엇갈린 판단을 내놓고 있다.

신 지원장은 강행규범 위반의 경우 학계 흐름상 피해 당시 규범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소급 적용이 되고 소멸시효도 배제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ICJ(국제사법재판소) 현직 재판관이 나치 강제노동 사건에서 "과거에 이뤄진 잔혹한 행위들에 관한 법적 효과를 피하기 위해 (법률의 시간적 효력을 다루는) 시제법이라는 도그마에 숨을 수는 없다"고 판시한 점 등을 근거로 "일본 측의 국제법상 책임 및 피해 회복을 인정하는 법리가 현 국제법 체제 안에서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신 지원장은 "유엔 총회는 1968년 '전쟁범죄와 인도에 반하는 죄에 관한 시효 배제 협약' 채택을 통해 인도에 반하는 죄와 전쟁범죄에 관해 시효가 적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채택했고, 2005년 '피해자 구제권리 기본원칙 및 가이드라인'에서도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행위에 대해선 국내 민사법상 소멸시효가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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