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 때 처음 영화를 만들었다. 22세 때 최연소로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장기 연출 계약을 맺었다. 29세 때는 블록버스터의 원조로 여겨지는 ‘죠스’(1975)를 선보였다. 역사상 돈을 가장 많이 벌어들인 영화감독으로 꼽힌다. ‘쉰들러 리스트’(1993)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77)는 초년에 성공해 돈과 명예를 손에 쥐었고, 여전히 영화를 만드는 행복한 감독이다.
영재 교육의 표본으로 곧잘 소환되는 그는 화목한 가정환경에서 별 어려움 없이 성장했을까. 그렇지 않다. 스필버그는 성장통 이상의 고통을 겪으며 청소년기를 통과했다. 그의 자전적인 영화 ‘파벨만스’는 주인공 새미(게이브리얼 러벨)를 통해 대가의 예사롭지 않았던 10대 시절을 되짚는다.
파벨만 가족의 맏이 새미는 어린 시절 ‘지상 최대의 쇼’(1952)를 보고 영상의 강렬함에 사로잡힌다. 영화 속 장면을 반복해 재현하다 이를 아버지 버트(폴 다노)의 카메라로 담게 되고, 영화에 몰입한다. 청소년이 돼서도 가족과 친구들을 동원해 영화를 만들며 감독의 꿈을 키운다. 하지만 새미는 어느 날 가족에 대한 영상을 편집하다 받아들이기 힘든 비밀을 발견하고 혼돈에 빠진다. 그는 컴퓨터 공학 초기 개척자인 아버지의 이직으로 뉴저지에서 피닉스로, 다시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며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래들의 폭력과 따돌림에 시달린다. 그런 그의 곁에는 늘 영화가 있다.
영화는 한 유명인의 역경 극복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새미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닥친 시련에 상처 받고 흔들린다. 새미의 꿈인 영화조차 그를 지탱해주지 않는다. 되레 어머니 미치(미셸 윌리엄스)의 악몽 같은 비밀을 전하는 매개체가 된다. 어머니 외삼촌의 예언처럼 영화는 “(새미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영화는 잠시 찬란하고 오래도록 어두웠던 새미의 청소년기를 과장 없이 전한다. 새미는 고통의 시간을 그저 견뎌내며 성인이 된. 영화는 고통이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흔한 메시지를 전하지도, 훗날 대가가 되는 청소년의 비범함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여느 성장 영화와 구별된다. 담담한 서술이 오히려 울림과 여운을 전한다.
영화광으로 10대를 보냈던 유명 영화인의 회고답게 여러 고전영화를 소환하고, 옛 영화인을 추억한다. 새미가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는 장면은 ‘욕망’(1966)과 ‘컨버세이션’(1974)에 대한 ‘오마주(경의 표시)’로 읽힌다.
스필버그가 영화화를 생각하게 된 것은 1999년이다. 시나리오 작가인 여동생 앤이 시나리오를 썼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20년을 미뤄 뒀다. 부모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알려졌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서 구체적인 영화화 작업에 착수했다. 어머니 리아는 2017년, 아버지 애널드는 2020년에 숨졌다.
스필버그는 최근 방송된 미국 CBS 토크쇼 ‘더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에 출연해 “새미가 가족의 비밀을 발견하는 장면을 원래 제외할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함께 시나리오를 쓴 작가 토니 쿠슈너가 ‘당신 인생 일대 사건의 중심 고리’라고 거듭 말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파벨만스’은 지난 12일 오후(현지시간) 열린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는 못했다. 2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