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8시 10분 서울 중구의 한 버스정류장. 성남과 용인, 화성 등 경기 남부지역에서 출발한 만원 광역버스에서 출근길 직장인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10여 대의 버스에서 90명 가까이 내렸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승객은 8명뿐이었다. 버스 하차 후 마스크를 벗은 정모(32)씨는 “만원버스에서 마스크를 벗기엔 아직 위생적으로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2020년 10월 13일 이후 888일 만에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다. 그러나 시행 첫 날 출근길 풍경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마스크를 쓴 사람이 훨씬 많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완전히 진정되지 않은 데다, 이날 미세먼지 농도까지 치솟은 탓이었다.
서울에서 이용객이 많기로 손꼽히는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도 맨 얼굴을 드러낸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전 8~9시 사이 개찰구를 오가는 시민들 중 마스크 미착용자는 20명 중 1명꼴이었다. 초등학교에서 보건교사로 일하는 A(30)씨는 “아직 코로나19에 한 번도 안 걸려 뒤늦게 학생들에게 감염시킬까 봐 마스크를 챙겨 썼다”고 말했다. 시민 주정오(62)씨는 “마스크가 익숙해졌고 여러 호흡기 질환을 막는 효과도 봐서 당분간 계속 착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마스크 착용 자율화 소식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가 눈치가 보여 다시 착용을 고민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광화문으로 출근하던 김모(30)씨는 “평소에도 회사에서 마스크를 안 썼는데, 오늘부터 전면 해제라 벗고 나왔다가 주변 사람들을 보고는 급하게 가방에 있는 비상용 마스크를 꺼냈다”고 겸연쩍어 했다.
마스크를 벗긴 했지만 김씨처럼 ‘예비용 마스크’를 따로 챙긴 이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노 마스크로 강남역에서 내린 최예니(26)씨는 “언젠가는 마스크 없는 세상이 오지 않겠느냐”면서도 “회사에서 교육 중엔 써야 해서 마스크를 챙겨왔다”고 설명했다. 홍순흥(69)씨는 “숨도 안차고 굉장히 자유로운 느낌이지만 오후에 병원에 가야 해 주머니에 하나 넣어 왔다”고 했다. 서울 지하철역 곳곳에는 열차 내 마스크 착용을 알리는 안내문이 아직 부착돼 있었다. 지하철역 개찰구와 버스 출입문 앞에서 교통카드 요금을 정산할 때에도 “마스크를 착용 하라”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공교롭게 이날 전국 대부분 지역에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지는 등 대기 질이 악화한 것도 시민들이 마스크 착용을 고집한 원인으로 보인다. 코 끝까지 마스크로 중무장한 채 을지로입구역을 나서던 조모(27)씨는 “평소엔 얇은 비말마스크를 썼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오랜만에 서랍에 있던 KF94 마스크를 꺼냈다”며 “밖에선 썼다가 안에선 벗기도 귀찮아 계속 착용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이모(25)씨는 “코로나19 전에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도 마스크를 거들떠 안 봤지만, 이젠 습관처럼 써 보호장비가 된 것 같은 느낌”이라며 마스크 일상화에 만족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