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3월 12일 ‘잠수함발사전략순항미사일(SLCM)’ 시험 발사는 군사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한반도 안보 환경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군 당국은 하루가 지나서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공개했고, 거의 모든 언론도 이 미사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의 북한 미사일 발사 상황 때처럼, 이번 발사 역시 북한이 월례 행사처럼 벌이고 있는 수많은 도발 중 하나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코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이번 미사일 발사는 지난 2월 23일의 지상 발사 순항미사일 ‘화살-2형’과 마찬가지로 이른 새벽 시간 함경남도 일대에서 이루어졌다. 북한 발표에 따르면 발사된 미사일은 2기였으며, 동해상에 설정된 1,500㎞ 거리를 8자를 그리듯 선회하며 7,563~7,575초 비행해 목표 수역에 명중했다.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이번 발사를 사전에 모두 파악하고 있었고, 당시 미사일 발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화살-2’형 발사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이 발표한 제원이 맞는지, 발사 시험이 성공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은 내놓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북한은 한국군이 탐지하지 못하는 시간대에 탐지하지 못하는 공역(空域)에서 발사했고, 미사일을 탐지하지 못한 한국군은 북한 미사일의 제원에 대해 발표하고 싶어도 발표할 자료가 없어서다.
북한이 동해상에서 발사한 미사일은 평소에 주로 쏘던 탄도미사일이 아니라 순항미사일이다. 탄도미사일은 발사 후 높이 치솟은 뒤 지상으로 떨어지는 비행 코스를 취하지만, 순항미사일은 발사 직후 수백m 상승했다가 다시 하강해 지면에 바짝 붙거나 상공 10~50m 고도에서 비행하는 코스를 따른다. 미국의 ‘토마호크’나 러시아의 ‘칼리브르’ 같은 미사일이 바로 이런 순항미사일에 속한다. 순항미사일은 여객기보다 조금 더 빠른 수준의 속도로 날기 때문에 일단 탐지만 하면 격추가 쉽지만, 비행 고도가 낮아 탐지가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대부분의 지상 배치 레이더는 높은 곳에 설치된다. 그래야 더 멀리, 더 넓게 볼 수 있다. 레이더는 기본적으로 하늘에 떠 있는 물체를 탐지하기 위해 운용돼 거리에 비례해 최소 탐지 가능 고도가 높아진다. 수백㎞를 탐지하는 장거리 레이더의 경우는 지구 곡면 효과로 먼 거리의 저고도 비행 물체를 탐지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진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지상·군함 공격용 순항미사일이 낮게 비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미사일 방어에 특화된 이스라엘제 그린파인 레이더를 충북 진천과 전남 보성에 배치하고는 있지만, 이들 레이더로 수백㎞ 밖에서 저공으로 날아가는 순항미사일을 탐지하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우리 군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기경보기’라는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E-737 ‘피스아이’가 그것이다. 피스아이는 최대 8시간 체공하며 반경 481㎞ 범위 내의 모든 비행 물체를 탐지할 수 있다. 조기경보기는 10㎞ 이상의 높은 고도에서 고출력 레이더로 사방을 내려다보는 방식으로 감시해 이론적으로는 피스아이 1대가 떠 있으면 북한의 순항미사일 따위는 얼마든지 탐지한다. 문제는 이 피스아이가 연중무휴·24시간 가동이 안 된다는 것이다. 공군이 보유한 피스아이는 총 4대다. 이 가운데 2대는 작전기로, 1대는 예비기로 쓰고 1대는 정비를 받는 방식으로 순환하며 운용된다. 즉, 4대가 있어도 실제 운용되는 기체는 2대뿐이며, 각각 8시간의 최대 체공시간과 이·착륙, 초계 구역 이동 소요 시간 등을 계산하면 하루에 최대 16시간 정도만 초계 작전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는 나머지 8시간 동안은 북한의 순항미사일 위협에 사실상 속수무책 상태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한이 지상·수중에서 순항미사일 발사 시험을 할 때 주로 새벽 시간대를 택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순항미사일 자체도 문제이지만, 발사 플랫폼도 문제다. 합참은 12일 미사일 발사는 1발은 어뢰발사관에서, 1발은 수직발사관에서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북한의 순항미사일이 잠수함의 533㎜ 어뢰발사관에서 발사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한국 입장에서는 재앙에 가까운 상황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제 533㎜ 어뢰발사관을 갖춘 북한 잠수함 수십 척이 순항미사일 투발 잠재 능력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북한 잠수함은 구형이고, 매우 낡아 ‘물속의 경운기’라는 평가는 심지어 군사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입에서도 나온다. 그러나 해군·국방부와 관련 연구 과제를 숱하게 수행하며 한반도 주변 바다의 수중 환경과 북한 잠수함의 성능, 한국군의 대잠수함 작전 능력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필자의 판단은 다르다. 보안상 구체적으로 기술할 수는 없지만, 해군이 현재 보유한 함정 가운데 소나(SONAR) 성능이 가장 뛰어난 군함들과 북한 ‘로미오급’을 붙여 본 모의 시뮬레이션에서 믿기지 않을 정도의 충격적인 결과가 여러 번 나왔다는 사실을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이러한 결과는 해군의 능력이 부족해서 나온 게 아니다. 한반도 주변 바다가 워낙 대잠 작전이 어려운 최악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다. 이런 환경에서는 세계 최강이라는 미 해군이나 일본 해상자위대 대잠 전력이 와서 작전해도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서해와 동해, 남해는 각기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서해는 강물과 오염물질의 유입이 많아 서로 각기 다른 성질을 가진 물의 덩어리인 수괴(水塊)가 발달해 있다. 각각의 수괴는 매질(媒質)이 달라 음파를 소실·왜곡·굴절시킨다.
해저 지면의 바위나 쓰레기에 의한 음파 난반사도 심각하다. 동해는 수심이 매우 깊고 온도층이 고루 발달해 서해와 다른 성격의 수괴들이 넘쳐난다. 수중 물체는 음파로 찾기 때문에 이러한 수중 환경은 대잠 작전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백번 양보해 이런 요소들을 전부 배제하고 우리 군함들이 100% 탐지율을 발휘한다고 해보자. 그렇다 해도 우리 군함의 소나 탐지 거리는 길어야 30㎞ 정도여서 우리 군함과 초계기들이 북한 영해에 죽치고 있지 않는 한, 북한 영해에서 미사일을 쏘는 잠수함은 죽었다 깨어나도 사전에 막을 수 없다.
대단히 불행하게도, 한반도 주변 해류는 우리에게 불리하게 흐른다. 계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서해에서는 연안 지역에 붙어 한국연안류가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즉, 서해에서는 북의 잠수함이 연안에 붙으면 해류를 타고 호남권 인근 해역까지 진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동해에서는 해안을 따라 북한한류가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서해와 마찬가지로 연안에 붙어 해류를 타면 경상북도 인근 해역까지는 어렵지 않게 침투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군의 레이더는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고, 순항미사일과 같은 저고도 비행체에 대해서는 매우 취약하다. 호남 해안과 영남 해안 일대에는 우리 경제를 먹여 살리는 주요 항만과 공업지대, 원자력발전소가 밀집해 있고, 북한은 이 순항미사일을 ‘전략순항미사일’, 즉 핵탄두 같은 대량살상무기 탑재가 가능한 무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 잠수함이 만일 해류를 타고 동시다발적으로 호남·영남 인근까지 진출해 연안에서 WMD 탄두가 실린 순항미사일을 쏘면, 우리는 무엇에 당했는지도 알아채지 못한 채 핵심 경제·에너지 인프라가 초토화되는 상황을 겪게 된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국가 지도부라면 군사력 건설 계획을 전면 재정비하고 북한의 새로운 위협을 저지할 핵심 전력인 해군력(특히 대잠 전력과 연안 방공 전력)에 대한 투자를 더욱 늘리겠지만,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무시했다면 ‘직무유기’다. 정부 당국의 각성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