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2시 서울 망우역사문화공원 게이트볼장. 귀밑머리 희끗희끗한 60~70대 어르신들이 한창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딱~, 딱’ 공치는 소리와 함께 고성도 오갔다. 다툼이라도 난 걸까?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한데 어울려 경기하다 보니 목청이 조금 높아진 거예요. 아무 문제없어요” 이유임(69) 중랑구 게이트볼연합회장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1990년대 중반 출발했으니까 벌써 30년 전통을 가진 게이트볼 연합회다. 특히 장ㆍ노년들로 구성된 회원 128명 중 약 25%(30명)가 장애인이다. 청각장애, 지체장애 등 장애 유형도 다양한 이들이 비장애인들과 한데 어우러져 편견 없이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다.
게이트볼이 장애인ㆍ비장애인으로부터 동시에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일단 누구나 즐길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게이트볼은 공을 스틱으로 쳐서 3곳의 게이트에 통과시키는 게임이다. 격렬한 신체활동을 수반하지 않기에 남녀노소 나이 제한도 없거니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조건에서 경기할 수 있다. 현재준 중랑구 장애인체육회사무국장은 “처음 온 회원도 2~3개월 정도 규칙을 익히고 기술을 연습하면 기존 회원들과 어울릴 수 있다”면서 “장애인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만 휠체어 장애인은 움직임에 다소 제약을 받는다”라고 설명했다.
접근성도 좋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게이트볼장의 문은 언제든 열려 있다. 월회비 5,000원이면 누구든 원하는 시간에 게이트볼을 즐길 수 있다. 이유임 연합회장은 “도시락을 까먹으며 하루 종일 연습하는 회원들도 있다”라며 웃었다.
무엇보다 “전략적 재미가 있다”고 한다. 골프와 비슷하지만 승리 요건이 다르다. 골프가 최대한 적은 타수로 홀에 공을 넣어야 승리한다면, 게이트볼은 일정 시간 안에 공을 게이트에 통과시켜 점수를 많이 내야 한다. 5명씩 팀을 이뤄 진행하는 ‘전략적인 단체전’이라는 점에서도 골프와 차이가 있다. 팀원들과의 협동 및 전략 수립이 굉장히 중요하다. 현재준 사무국장은 “치밀하고 일관성 있게 전략을 짜는 주장의 리더십이 중요하지만 주장을 믿고 따르는 팀원 간 신뢰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단 1라운드로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집중력이 매우 필요하다. 모르긴 몰라도 치매 예방에 가장 좋은 스포츠일 것”이라며 웃었다.
‘운동 습관’을 기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경증 지체장애인인 이재흥(76)씨의 경우 지난 2003년 건강 회복을 위해 운동 삼아 게이트볼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20년 베테랑이 됐다. 이씨는 “서서 걷고 굽히고 휘두르면서 꾸준히 몸을 움직인다”면서 “또 우리 공뿐만 아니라,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예상하며 서로 대화해야 한다. 노인들에겐 이만한 신체ㆍ정신적 운동이 없다”라고 예찬론을 폈다.
‘원팀’이 되자 실력도 쑥쑥 자랐다. 지난해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했고, 올해 서울시민체육대축전 예선 역시 가볍게 통과해 전국생활체육대축전 서울시 대표로 선발됐다. 서울시 대표 10명 가운데 3명이 이곳 중랑구 출신이다. 게이트볼 필드 한쪽에 마련된 사무실 벽에는 백여 개는 훌쩍 넘을 듯한 트로피와 상패들이 가득 줄지어 있었다. 생활체육지도자 신종인(73)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어울릴 만한 소재가 사실 많지 않다”면서 “하지만 게이트볼 필드에선 서로 자연스레 어울리고 좋은 성적까지 내다보니 친목이 돈독해졌다”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구분이 조금씩 희석된다. 어우러짐의 가치가 멀리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중랑구 장애인체육회는 지난 1월 유규상(32)씨 같은 젊은 장애인 생활체육지도자(중증뇌병변장애)를 새로 배치하는 등 연령층을 확대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저변을 확대하고 더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연령층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유씨는 “학교 체육에 게이트볼을 포함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고 건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