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일본 방문 최대 성과는 한국이 주도권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16~17일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성과로 '주도권 확보'를 꼽았다. 정부가 '제3자 변제' 방식의 강제동원 해법 제시로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한 물꼬를 먼저 튼 만큼, 향후 국제무대나 한일 및 한미일 간 긴밀한 전략적 관계 속에서 일본의 후속조치가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돼 있다. 당장 국내적으로 지지율 하락 조짐도 나타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이를 극복할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일본 방문은 단 이틀이었지만 한국 정부가 한일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가 됐고 국제관계에서도 주도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외교 당국자도 본보 통화에서 "한일관계에서 주도권이 한국으로 넘어왔다"며 "미국뿐 아니라 일본 국내 여론도 한국의 결단을 높이 평가하면서 일본 정부에 결단을 촉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했다.
다만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구체적인 호응 조치가 없었던 만큼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을 의식해 주말에도 홍보전에 주력했다. 대통령실은 전날 보도자료에서 △경제안보 분야 등의 협력 범위 확장 △양국 관계 개선의 전환점 등을 성과로 제시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전날 YTN, 연합뉴스TV에 나와 "한일 간 정치권과 시민사회 교류가 넓어지고 신뢰가 쌓인다면, 일본 측과 국내 정치에 조금 더 긍정적인 환경이 조성된다면 (일본의 호응 조치는)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도 이날 "윤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받는 관심이 크지만 일본 정부의 후속조치를 통해 기시다 총리도 주목받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일본의 호응 조치를 견인하는 데 미국의 역할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대통령실은 다음 달 말 예정된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을 일본의 호응 조치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일관계 개선이 미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안보 확립에 있어 최우선 선결조건이었던 만큼, 미국이 한국 측 목소리를 반영해 일본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한미일 협력의 가장 약한 고리였던 한일관계와 관련해 윤 대통령이 먼저 해법을 제시한 만큼, 미국이 우리의 입장을 반영해 일본을 설득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또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서도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을 초청해 한미일 경제ㆍ안보 협력을 재확인할 가능성이 크다. 이후 여름쯤으로 예상되는 기시다 총리의 방한에서 '공동선언문' 등의 형식으로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 조치가 나올 수 있다고 대통령실은 보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4월 통일지방선거 승리와 5월 G7 성공적 개최라는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난다면, 이후 호응 조치에 전향적으로 나설 환경이 마련되는 셈이다.
관건은 일본의 호응 조치가 나올 때까지 국내외 여론을 관리할 수 있느냐다. 한일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 요구와 독도 문제 등을 거론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에 국내 여론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과거사와 영토 문제는 한일 양국에서 갈등을 분출시킬 수 있는 휘발성이 강한 의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정상회담 의제가 아니었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일본 극우 정치인이나 언론을 통해 언제든 반복될 우려가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전날 KBS에서 '의제로 논의된 바 없다는 것은 기시다 총리가 그 부분에 대해 말을 꺼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정상회담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즉답을 피했다. 다만 정부는 일본의 언론 보도에 대한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정치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한일관계에 금을 내려는 시도는 양국 정부 모두가 반응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대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