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둘러싼 노정(勞政) 간 힘겨루기에서 이긴 쪽은 정부다. 집중 공격을 받은 양대노총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는 싸움이었다. 국고 보조금 외에 조합비 운영까지 정부가 들여다보는 건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고, 노조 전반의 회계 비리가 불거진 것도 아닌데 정부가 문제 삼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여론은 정부 편이었다.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방안에 70%가 찬성했고, 특히 MZ세대는 85%가 지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회계 문제를 거론하며 '노조 때리기'에 나설 때마다 지지율은 상승했다.
프레임 싸움의 결과였다. '노조 회계는 깜깜이'라는 프레임이 형성되자 "자체 규정에 따라 예결산 내역을 조합원에게 공개하고 있다"는 노동계의 설명은 힘을 잃었다. 정부가 노조에 회계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과태료를 물리는 것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근로시간 유연화, 임금체계 개편 등 산적한 노동개혁 과제만큼 시급한 일이냐는 문제 제기도 먹히지 않았다.
프레임 개념의 창시자인 조지 레이코프 미국 버클리대 교수는 프레임 싸움에서 범하는 실수로 프레임을 재구성하지 않은 채 상대방의 주장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을 말해 상대편의 주장에 모순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양대노총은 회계 처리의 결백함과 정부 개입의 부당함을 주장했지만, 레이코프 교수의 관점에선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는 실수를 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27%의 노조가 정부의 회계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했으니, '노조 회계=깜깜이' 프레임만 확고해졌다.
노동개혁의 프레임 싸움 2라운드는 근로시간 개편이었는데, 결과는 정부의 완패다. 이번엔 정부가 억울할 만하다. 개편 취지는 1주 12시간으로 묶인 연장근로의 획일적 규제를 풀어 바쁠 때 몰아서 일하고, 여유 있을 때 푹 쉴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시대 변화에 맞춰 근로시간에 대한 노사의 선택권을 확대하려는 것이었지만, '주69시간 노동'이란 프레임이 작동했다.
연장근로 유연화로 가능하게 된 '최대 주69시간 노동'은 극단적인 사례일 뿐 근로시간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설명과 노동자의 '공짜 야근'을 막기 위해 포괄임금제를 집중 단속하겠다는 계획도 '69'라는 강력한 숫자의 블랙홀에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게다가 MZ세대 노조 의견을 중시한 정부는 기존 양대노총과 이들을 구분하는 프레임으로 '세대 갈라치기'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정작 MZ노조마저 근로시간 유연화에 반대하자 개혁 명분도 잃었다. 여론 악화로 근로시간 상한을 주50시간대로 조정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지만, '근로시간 개편=장시간 노동'이란 프레임이 작동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개혁 작업에서 프레임을 활용하는 것을 나쁘다고만 볼 순 없겠다. 그래야 대중의 정서를 발판 삼아 추진 동력을 얻고, 협상 상대보다 우위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진실이 프레임과 맞지 않으면 프레임은 남고 진실은 튕겨 나간다"는 레이코프의 말은 새겨야 한다. 프레임은 당초 의도와 정반대로 만들어져 언제든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