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점 받을 만한 결단" "日 무성의에 F학점"[한일정상회담 전문가 평가]

입력
2023.03.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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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일관계 전문가 6인 진단]
한국은 명분, 일본은 실리 챙긴 구도
첫 관문 넘어... 부족한 부분 채워가야
강제동원 日 호응조치가 결정적 변수
尹 선제적 양보에 국제사회 후한 평가

한일 양국은 16일 정상회담을 통해 관계개선의 물꼬를 텄다. 12년 만에 셔틀외교를 복원하는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피해배상을 둘러싼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본의 '성의있는' 호응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은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첫 관문을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바꿔 말하면, 다음 스텝이 기대에 못 미칠 경우 한일관계는 다시 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강제동원 해법도 국내 여론의 반발과 일본 전범기업의 미온적 태도를 감안하면 아직은 완성형이 아니다. 이를 놓고 "80점은 받을 만하다"는 긍정평가와 "F학점짜리 회담"이라는 혹평이 엇갈렸다. 한국이 명분을 쥐고 회담을 주도했지만, 실리를 챙긴 일본이 다시 요구사항을 내걸고 압박수위를 높일 수도 있다. 국내 한일관계 전문가 6인의 평가를 19일 들어봤다.

강제동원 日 호응... “낙제점” vs "추가 호응 있을 것"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만 언급했다. 이에 대해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역대 일본 내각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배상이 끝났고 한국인 노역은 불법이 아니라는 입장"이라며 "윤 대통령이 강조한 자유·인권·법치를 공유하고 연대하기는커녕 피해자의 권리를 무시한 F학점짜리 회담"이라고 비판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기시다 총리의 (강제징용 관련) 발언은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며 "정치적 입지가 탄탄하지 못한 탓에 더 진전된 발언을 당장 내놓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숙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 언론들도 '이제는 기시다 총리가 화답해야 할 차례'라고 보도하고 있다"면서 "다음 정상회담에서는 진전된 답변을 가져올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기시다 총리는 결단력이 약하지만 언론이 판을 깔아준 만큼 전향적 입장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무엇보다 윤 대통령이 제3자 변제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피해자들에게 무릎 꿇는 심정으로 설득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비판 여론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尹의 선제적 ‘양보’... “한국이 명분 쥐었다” vs"우리 실익 불분명"

제3자 변제는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일본 피고기업 대신 우리 기업의 기부로 배상하는 방식이다. 윤 대통령은 이 같은 양보를 발판으로 일본과의 관계발전과 미래청사진을 강조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윤 대통령이 전술적으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전략 목표 달성을 위한 시동을 거는 선택을 한 것"이라며 "이번 정상회담은 80점은 받을 만하다"고 평가했다. '한일관계 복원→한미동맹 업그레이드→한미일 협력 강화→인도·태평양지역 이익 확보'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주요 외신들은 '한국이 대승적 결단을 했다'고 전했다"면서 "미래에 주안점을 둔 우리 정부의 대화 의지를 국제사회가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윤석열 정부가 원리주의적 투쟁 대신 거시적 관점에서 한일관계를 회복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며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일본이 지는 게임을 시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윤 대통령이 일본 방문을 원한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후 일본에 끌려가듯 강제징용 해법 발표와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서 “그 과정에서 일본이 얻은 실익은 분명한 반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얻었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日과 경제 협력 시너지 기대... A·B·C·D 산업 꼽혀


양국 정상은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협력과 교류를 강조했다. 특히 올해 녹록치 않은 국제경제 여건 속에서 일본은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 있다. 신 전 대사는 "우리는 제조업과 마케팅, 일본은 자본과 기술에 강해 시너지를 낼 분야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표적으로 자동차(Automobile), 배터리(Battery), 반도체(Chip), 디스플레이(Display) 등 ‘A·B·C·D’ 산업을 꼽았다.

다만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양국의 갈등요인이다. 호사카 교수는 "기시다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합의를 이행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이는 주한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유대근 기자
문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