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표이사(CEO)를 뽑기 위한 KT 주주들의 표심이 대주주와 외국인 투자자·국내 소액주주 사이 대결로 굳어지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의결권 자문기관들이 잇따라 윤경림 KT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사장) CEO 선출안에 '찬성' 의견을 내면서다. 500만 주 결집운동을 펼치고 있는 소액주주들은 실제로 얼마나 힘을 모으냐에 따라 캐스팅보터가 될 전망이다.
미 뉴욕에 본사를 둔 세계적 의결권 자문기관 ISS가 KT 새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된 윤경림 사장을 선임하는 안건에 '찬성'을 권고했다. 앞서 역시 찬성 의견을 냈던 미 샌프란시스코의 글래스루이스에 이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자문기관의 '빅2' 모두 윤 사장을 지지하고 나선 것. 반면 1·2대 주주 국민연금과 현대차그룹은 윤 사장에게 부정적이어서 31일 주주총회에서 있을 선임안 투표를 앞두고 양측의 표 대결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액주주들이 어느 측 손을 드느냐도 승부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ISS는 18일 KT 보고서를 통해 윤 사장이 CEO로서 기존 경영 방향에 연속성을 보여줄 수 있고 회사 사업 계획을 주도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현직 구현모 대표와 함께 디지코(DIGICO·디지털 플랫폼 기업) 전략을 이끌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미디어 사업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 공을 세운 점을 평가했다.
먼저 찬성 입장을 냈던 글래스루이스는 국내에서는 국민의힘과 대통령실 등에서 윤 사장을 겨냥해 "이권 카르텔"이라고 비판하고, 시민단체는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 고발까지 나섰지만 "주주들이 우려할 만한 실질적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KT 지분의 약 43%를 갖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 상당수는 두 자문기관의 의견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정치적 판단보다는 자문기관 의견을 중심으로 한 기업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성향이다. CEO 선임안에 반대표 행사가 유력한 국민연금(10.1%), 현대자동차그룹(7.7%)과 표 대결에서도 의미 있는 숫자다. 다만, 대주주들처럼 외국인들의 모든 표가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진다고 100% 장담할 순 없다. 500만 주 지분 모으기 운동을 전개하는 소액주주들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커지는 이유다.
회사 지분 약 33%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 소액주주들은 ISS와 글래스루이스 찬성 권고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국민연금이 CEO 선임안에 발목을 잡는 배경으로 정치적 압박을 의심하는 상황에서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셈이다. 한 주주는 "외국인들 몰표와 개인들 결집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주주는 "이제부터라도 정치인들은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며 "소액주주들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고 기세를 올렸다. 이들은 주총 현장에 가기 어려운 주주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전자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진 결과도 인증하고 있다.
소액주주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A씨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세계적 자문기관들이 객관적 기준으로 CEO 선임이 회사와 주주 가치에 가장 좋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국민연금은 무슨 근거로 반대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날을 세웠다. 또 "소액주주들이 이렇게 힘을 모으는 것은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며 "개미들의 목소리가 최종 결과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커뮤니티를 통해 회사 주식 수를 인증하고 CEO 선임안에 찬성 의견을 밝힌 소액주주는 약 1,800여 명, 주식 수는 365만 주(약 1.4%)를 넘어섰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확실하게 찬성표 선택이 예상되는데, 주식 수 500만 주(약 2%)를 모아 주총 판을 흔들 계획이다.
한편 KT 노조도 주총을 앞두고 여론전에 나섰다. 한국노총 소속 제1노조는 주총 하루 전인 30일 대의원 대회를 연다. 해당 노조는 1만8,000여 명의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기준 KT 전체 임직원이 2만 명 수준임을 고려하면 전체 회사 구성원의 90%가량이 가입했다. 이들은 앞서 구현모 연임안에 찬성했던 만큼 CEO 후보인 윤 사장에 대해서도 긍정적 의견을 낼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민주노총 소속으로 조합원 20여 명을 보유한 KT 새노조는 주총 당일 기자회견을 열고 CEO 선임안을 규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