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신 찍고 울었다"...임지연이 밝힌 박연진의 모든 것 [HI★인터뷰]

입력
2023.03.19 11:58
넷플릭스 '더 글로리' 학폭 가해자 박연진 역 맡은 배우 임지연
"실제 학창시절은 전혀 달라... 연기하며 성격 변화도 겪었다"

뽀얀 피부에 진한 눈썹과 깊은 눈을 지닌 임지연은 2014년 영화 '인간중독'을 통해 대중에 눈도장을 찍었다. 송승헌의 상대역으로 등장해 신인답지 않은 파격적 연기를 선보였던 그는 신비로운 분위기로 단숨에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강아지처럼 순한 인상에 청초한 매력을 물씬 풍기는 임지연에게는 주로 착한 역할들이 주어졌다.

'시크릿 가든' '태양의 후예' '도깨비' 등 인기 드라마를 집필한 김은숙 작가는 임지연의 천사 같은 얼굴 이면의 모습을 상상했다. 임지연은 악역이 첫 도전이었지만 자신감이 있었다. 악마의 심장을 가진 '더 글로리' 속 학폭 가해자 박연진으로 그는 완벽하게 다시 태어났다. 화면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며 스스로도 놀랐다. 시청자들은 오죽했을까. 그의 여리여리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뜩한 기운에 압도 당했고, 피해자 동은(송혜교)의 상황에 더욱 깊게 몰입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임지연은 어떻게 극강의 악역 박연진에 다가갔을까. 그와 만나 '더 글로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박연진과의 첫 만남

'더 글로리' 공개 후 김은숙 작가는 임지연을 향해 "악역 체질"이라고 칭찬한 바 있다. 임지연은 이날 인터뷰에서 "악역이 항상 하고 싶었다. '내게도 제대로 된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나이를 먹고 내공 있는 선배들처럼 연기적으로 쌓였을 때 기회가 주어지면 해봐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와서 도전을 하게 됐다. 내 안에 있는 악역의 에너지를 많이 끌어내보자고 생각하며 임했다. 잘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있고 표정이나 얼굴이 꽤 잘 어울리는 것들이 보여서 나름 만족을 한다"고 말했다.


임지연이 느낀 박연진의 첫인상은 어땠을까. "'어떻게 이런 여자가 있지' '이렇게 죄책감이 없는 사람이 있지' 생각했다. 어려웠다. 대본 자체가 재밌어서 연진이 역할이 아니어도 참여는 했을 거 같다. 대본을 받고나서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갖가지 방법으로 아이디어를 내려고 노력했다. 나중엔 나만 할 수 있는 빌런이 돼보자 했다. 작가님과 감독님이 나에게서 악마 같은 뭔가를 봤나보다. (웃음) 내가 자신감을 많이 내비친 거 같다. 끝까지 자기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연진이가 됐음 좋겠고 처음 하는 악역이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스스로 새롭게 발견한 부분도 있다. "내가 표정 근육을 그렇게 많이 사용하는지 몰랐다. 눈썹이 짙은데 많이 쓰는구나 싶더라. 미간 주름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 게 많이 보여져서 좋았다. 또 내가 한쪽으로 웃는 버릇이 있는데 잘 어울리게 묻어난 것 같다. 애교 떠는 와이프의 모습이나 (나도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발견한 게 많았다."

임지연은 어떤 캐릭터를 참고하기보다 자신만의 박연진을 만들고자 했다. "따로 참고한 건 없다. 처음엔 유명한 명작 속 빌런을 따라해볼까 생각도 했다. 그런데 연진이에게 이유를 만들게 되고 환경을 생각하게 되고 오히려 갇혀지는 느낌이었다. 다 열어놓고 최대한 나로서 입체감 있게 다 해보자고 결심했다."

악역 5인방과의 추억

악역 중 가장 욕을 잘하는 사람으로 임지연은 사라 역의 김히어라를 꼽았다. "히어라 언니가 욕을 진짜 차지게 잘한다. 재준이(박성훈)도 '어라 욕 진짜 잘한다'고 했다. 다들 고민한 흔적이 많이 느껴졌다. 다들 절실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거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절실했고, 잘해내려고 노력했다. 혜정이랑 사라, 연진은 너무 친해서 자주 만났다. 서로 놀리느라 바빴다. 혜정이가 몸에 핏 되는 옷을 입고 오면 '너 숨 안 쉬어지지?' '어디다 눈을 둬야 할 지 모르겠다' 했다. 이번에 정말 소중한 사람들을 얻어서 감사하다."

'더 글로리' 속 다른 역할들도 탐난다면서 특히 이사라 역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다 너무 욕심 난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다. '더 글로리' 끝나고 '마당 있는 집'을 마무리했다. 그 안에서는 현남 캐릭터랑 비슷한 역할이다. 남편에게 매맞고 사는 임산부 역이다. 그래서 이사라가 탐난다. 맛이 간 눈이 너무 매력적이라고 느껴진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라의 연기가 너무 좋았다. 사실 악역뿐만 아니라 다 해보고 싶다. 동은이 같이 복수의 칼을 가는 역도 해보고 싶다."

악역 5인방과는 서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연기에 임했다.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동은이랑 있을 때는 어찌 보면 (연진은) 겉으로 표출하고 동은이는 감춘다. 혜교 언니가 나를 많이 받아줬다. 감사한 마음에 서로 으쌰으쌰 노력을 많이 했다. 명오를 죽이는 신 같은 경우는 리액션이다. 처음부터 명오의 신이라 생각했고, '하고 싶은 거 다 해. 내가 다 받아줄게' 그랬다. 사적으로 만났을 땐 소통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실제로 친해지니까 오히려 편했다."

5인 중 가장 나쁜 캐릭터로는 혜정(차주영)을 꼽았다. "여기저기 달라붙어서 혜정이가 제일 나빠 보인다. 연진이는 잃을 게 많아서 지키려고 하다 보니 또 다른 악행을 저지르는 것도 있다. 혜정이는 방관자의 입장이면서도, 처음엔 동은이가 되기 싫어서 그랬다면 또 다른 악행을 저지르고 있고 그런 부분들을 봤을 때 혜정이가 제일 나쁜 애 같다."

박연진과는 전혀 달랐던 학창시절

신들린 연기 탓에 실제 일진 출신으로 오해도 받은 임지연은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을까. "나의 학창시절은 귀여웠다. 나대는 거 좋아하고 장기자랑이나 이런 걸 좋아했다. 연기에 대한 꿈이 어릴 때부터 있었다. '나는 끼많은 사람이야'라는 걸 표출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하."

임지연은 아역 신예은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리딩날 처음 보고 그 이후로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고민이 많았다. 성인 배우로서 아역이랑 연결되지 않으면 사실 힘들어진다. 이 배우가 하는 톤이나 이런 걸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겹치는 부분이 꽤 있었다. 너무 나랑 비슷하더라. 말투나 느낌이 비슷해서 그냥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아역들이 너무 잘해줘서 감사하다."


자신과는 전혀 닮지 않은 연진이를 표현하는 게 분명히 쉽진 않았다고 돌아봤다. "연진이를 이해할 수 없다. 절대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표현하려고 캐릭터 분석에 고민을 많이 했다. '왜 이렇게 됐나' '어떤 인간일까' 생각했지만, 연진이는 그냥 어떤 죄책감도 느낄 수 없는 인간이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태어나서 무슨 잘못을 한 건지도 모른다. 답을 찾으니까 풀리더라. 분명 이 세상에 연진이 같은 사람이 한명쯤은 있을 거 같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힘들고 이해가 안 되긴 했다."

임지연의 자연스러웠던 흡연 신도 SNS 등에서 화제가 됐다. "담배나 욕은 연진이의 중요한 부분이다. 어색할 바엔 하지 말자 싶었다. 욕은 워낙 가해자 친구들이 이미 잘해서 크게 자극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다양한 지점으로 시작했다. 혼자 열받아서 하는 욕이랑 찐친이랑 하는 욕이랑 동은이 만나서 분해서 하는 욕이랑 접점을 많이 생각해서 진짜 차지게 해보자 했다. 담배는 남편 앞에서 피우는 담배와 혼자 욕하며 피우는 거랑 끄는 방법들, 빼서 무는 방법들을 디테일하게 잡으려고 했다. 하나하나가 연진이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임지연이 꼽은 명장면

임지연은 '더 글로리' 명장면으로 송혜교와 이도현의 신을 골랐다. "동은과 여정의 신들을 너무 좋아한다. '내가 망나니가 되어줄게요' 하는 신을 정말 슬프게 봤다. 이 작품의 명장면은 그 장면 같다."

"연진이의 명대사는 '알아들었으면 끄덕여'다. 대본에 빨간 줄을 칠 정도였다. 때론 별거 아닌 대사가 크게 와닿는 경우가 있다."

임지연에게 박연진의 진짜 미운 부분 세 가지를 물었다. "가장 먼저는 동은이가 복수를 멈출 기회를 줬는데도 끝까지 용서를 구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현남 선배와의 장면에서도 깊은 눈물을 많이 흘렸는데, 연진이가 집에 찾아가서 '오늘 남편 일찍 오겠네요' 하는 장면은 내가 봐도 진짜 나쁜 거 같다. 웃으면서 고데기를 갖다대는 신예은 배우의 어린 연진이를 봤을 때도 정말 미웠다."

임지연은 연진을 연기하며 실제 성격의 변화도 겪었다. "감독님한테 '촬영하면서 성질머리가 너무 더러워진 거 같다'고 장난도 쳤다. (촬영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에 오면 짜증이 나고 묘하게 성질이 나더라. 이미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 그런 순간들이 많이 찾아오더라."


감옥에 가는 엔딩에 대한 생각은 어땠을까. "연진이는 끝까지 잘못을 몰랐을 거 같다. 연진이가 받는 벌은 연진스럽게 받는 최고의 벌이라 생각했다. 잘못인지 모르는 것도 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악행을 그대로 되돌려 받으면서 자신이 왜 억울한지만 생각하면서 평생 살아갈 거 같다. 그 신은 찍고서 많이 울고 힘들었던 거 같다."

주변의 폭발적 반응

"너무 신기했다. 이 정도의 칭찬은 처음이었다. 작품이 잘 되고 나니까 느껴지는 건 '나는 연기에 대한 자격지심과 배우로서의 자격지심이 넘쳐나서 연기를 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성장하고 싶고 성취감을 느끼고 싶고 그 노력으로 뭔가 내 스스로 만족하고 조금이라도 날 칭찬해 줄 수 있는 기쁨을 얻고자 한 거지, 인정받고자 이 길을 온 건 아닌 거 같더라. 잘 되고 나서 더 느껴진다. 언제 또 연기력 논란이 올지 모르니까 (웃음) 주어진 걸 하던 대로 열심히 해야겠다. 현장이 불안하고 아직도 혼날까 봐 무섭다. 그러나 계속 도전하다 보면 다른 캐릭터를 찾을 수 있을 거 같고, 그 행복으로 연기하고 싶다."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 식구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우리 단톡방이 있다. 이정재 선배님과 정우성 선배님이 칭찬을 많이 해줬다. 개인적인 문자를 계속 하더라. 원래 그렇게 연락 많이 안 주는데. 하하. 가족들한테 칭찬 받거나 고생했다고 얘기 듣는 경우는 있는데 선배들이나 동료들에게 칭찬을 이렇게까지 많이 받아본 적은 처음이다. 그건 좀 신기하고 감사했다."

SNS상에서 화제가 된 패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연진이는 잘 사니까 처음엔 '명품 옷을 많이 입자' 하고 최대한 할 수 있는 명품은 다 피팅을 했다. 그런데 약간 느낌이 다르더라. 나에게 잘 어울리되 대놓고 명품인 거보다 진정한 고급스러움을 찾아보자 싶었다. 비비드한 컬러나 찰떡같이 맞는 옷들을 찾았다. 현남을 만날 때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쨍한 옷을 입고 디테일이 많은 징 포인트를 주는 등 스타일리스트랑 상의를 해서 스타일링을 했다. 집 안에서 남편 앞에서는 최선을 다해 섹시하려고 노력했다."

기상캐스터 연진이 시원하게 사직서를 던지는 장면은 직장인 친구들도 열광케 했다. "직장인들이 속 시원하다고 말을 많이 하더라. 가장 연진스럽게 사직서를 낸 건데, 재밌어하고 속 시원해하더라. 친구들도 그 장면이 제일 좋다더라.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중에) 사직서를 그렇게 낼 거라더라."

유수경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