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네들 이탈하려고 오는 거예요.”
14일 인천 연안부두 인근 한 선사 건물 안에 있는 단칸방 숙소. 입국 과정에 대해 설문조사 중인 베트남 선원 10여 명을 가리키며 회사 사장이 대뜸 말했다. 선원들은 현지의 민간 인력회사(송출업체)에 1,500만 원 넘는 돈을 줬고, 들어와선 임금·퇴직금 체불에 시달린다고 호소하던 중이었다. 입국할 때부터 갈취의 덫에 걸린 이주선원과 결국엔 도망쳐 손해를 입힐 거라고 생각하는 선주 사이에 놓인 ‘불신의 벽’은 상당해 보였다.
이날 만난 94년생 A씨는 베트남 송출업체에 1만7,000달러(약 2,200만 원)를 주고 외국인선원제도(E-10-2)를 통해 2020년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대출로 마련한 돈을 갚기 위해 매달 250만 원을 받으며 인천에서 꽃게잡이 배를 탔다. 그는 “한 번 조업 나가면 한 달 내내 배에서 지냈고, 하루 근무시간은 보통 18~20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현재는 다른 배를 타고 있지만 첫 직장의 퇴직금(375만 원)은 아직도 못 받았다.
같은 비자로 들어온 89년생 베트남 선원 B씨는 지난해 6월 조업 중 다쳐 20일 넘게 입원했다. 새우잡이 그물을 끌어올리는 배의 로프가 끊어지면서 머리와 팔을 강타했기 때문. 그가 받은 비자로는 원양어선과 20톤 이상 연근해어선에서만 일할 수 있지만, 정작 사고가 난 배는 고용허가제비자(E-9-4)가 적용되는 20톤 미만이었다. B씨는 “고용계약을 한 선주가 '일이 없을 땐 다른 배를 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주선원 송·출입 문제를 개선하고자 설문조사 중인 성요셉노동자의집 김호철 사무국장은 “이주선원 모집·관리를 모두 민간이 맡고 있어 막대한 송출비용이 발생하고, 제대로 된 근로감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원법 대상인 외국인선원제도의 주무부처는 해양수산부다. 하지만 E-10-2 비자 이주선원 모집·관리는 해수부→수산업협동조합→국내 민간 송입업체→현지 사설 송출업체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 구조로 돼 있다. 관련 업무를 위탁받은 수협이 송입업체에 이주선원 모집·관리를 재위탁하고, 현지 송출업체가 인력을 보내주는 식이다. 이때 송출업체는 이주선원이 계약기간 내 배를 떠날 경우 돌려받지 못하는 이탈보증금 수백만 원을 송출비용으로 함께 받는다. 이탈을 막고자 송출업체가 집·땅 문서를 보관하는 경우도 잦다.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장은 “비자 연장, 선박 이전 때마다 100만 원 안팎의 불법 수수료를 떼 가던 관행이 선원법 위반으로 어려워지자 최근엔 송출비용에 포함시켜 미리 받은 뒤 차감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송출비용이 뛴 배경이다. 약 10년 전 국가인권위원회가 185명 이주선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베트남 이주선원의 송출비용은 1,200만 원 안팎이었다.
장시간 노동과 폭언, 임금체불은 일상적이고, 사고가 나도 제대로 보상받기 어렵다. 어선원재해보상법의 적용을 받는 20톤 이상 배의 경우 해수부가 수협에 위탁해 재해보험이 운영된다. 앞서 2016년 대법원은 이주선원에 대한 재해보상 시 내국인 선원과 동일하게 해수부 장관이 고시하는 기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6년 전 이주선원들이 기준임금보다 낮은 최저임금으로 재해보상액을 산정·지급받은 것에 대해 소송한 결과다. 그러나 판결 이후에도 바뀐 게 없다.
갈취와 차별로 얼룩진 입국·노동 환경은 이주선원의 이탈로 이어지고, 어업 선원 부족 문제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지난해 E-10-2 비자로 들어온 베트남 이주선원의 이탈률은 21.6%였다. 누적 이탈률은 37.8%에 달한다. 베트남 이주선원이 처음 온 때부터 지난해 연말까지 1만4,040명이 들어와 5,304명이 근무지를 벗어나 불법체류자가 됐다.
그런데도 해수부의 문제개선 시계는 더디게 흐른다. 앞서 2012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내국인 선원노조와 선박소유자단체가 이주선원의 최저임금을 정하도록 한 고시를 개정해 임금 차별을 시정하라고 권고했다. 해수부는 이듬해 4월 개선하겠다고 답했으나 10년 가까이 지난 지난해에야 2023년부터 이주선원 최저임금을 단계적으로 올려 2026년엔 내국인 선원과 같게 하겠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에서 대표적인 인신매매로 규정하는 신분증·여권 압류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2013년 관련 대책을 내놓으면서 이주선원 ‘동의’가 있으면 선주 등이 대리 보관할 수 있도록 지침을 둬 오히려 인권침해를 정당화했다. 그러다 재작년 선박 소유자의 대리 보관을 금지했다.
민간에 떠맡긴 이주선원 모집·관리, 희박한 정책 개선의지가 이주선원과 선주 사이의 불신의 벽을 높이고,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 소장은 “송출입이 영리를 취하는 민간에 맡겨져 있는 한 최저임금이 오르면 송출비용도 함께 뛰어 이주선원에게 돌아갈 혜택이 줄게 될 것”이라며 “뱃일을 잘해도 송출비용이 없으면 올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송·출입 과정에서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협에 위탁한 송입업체 지정·퇴출권을 회수해 해부수가 직접 관리하고, 장기적으로 정부가 이주선원 송·출입을 주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해수부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정부와 2021년 ‘어선원 송출·근로분야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고, 관련 실무협의를 조만간 개최할 예정”이라며 “양국의 공공기관이 송·출입을 담당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 그렇게 제도를 정비하고, 다른 나라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이주선원 중 대다수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