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에너지 수송을 책임지는 외항 상선의 절반 정도가 약 10년 후 ‘개점휴업’ 상태에 빠질 것으로 전망됐다. 곪고 곪아 온 선원 부족 문제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하면서 외화벌이 효자 노릇을 해온 해운산업마저 침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한국인 해기사 인력 유지 도출을 위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32년 외항 상선에 공급될 해기사는 총 6,128명으로 추산됐다. 전체 수요(1만4,728명)의 41.6% 수준이다. 해기사는 배 운항을 위해 필수적인 선장·기관장·항해사·기관사 같은 간부 선원을, 외항 상선은 컨테이너선·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유조선 등을 말한다.
이번 연구는 한국해양대 교수를 지낸 전영우 한국해기사협회 해기인력정책연구소장이 해기사 직종·직급별 수요·공급, 이직률 등을 종합적으로 시뮬레이션(모의시험)한 결과다. 국내 선사의 외항 상선이 1,541척(지난해 1,211척)까지 늘어날 거라는 전망을 바탕으로 했다.
직급별로 보면 선장·기관장은 각 1,900여 명이 필요하지만 공급인력은 선장 1,040명, 기관장 836명에 그칠 것으로 봤다. 선장은 외항 상선 800척, 기관장은 643척만 운항할 수 있는 규모다. 6개월 정도 배를 타고 2개월 남짓 휴가기간을 갖는 근무 특성을 감안해 외항 상선 1척당 보통 1.3명의 선장·기관장이 필요하다.
전 소장은 “현 추세가 계속될 경우 나머지 700척 이상은 한국인 선장·기관장을 구하지 못해 운영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항해사·기관사는 외국인에게 문이 열려 있지만, 선장·기관장은 한국인만 채용해야 한다. 전쟁 상황에서의 물자 수송 등을 고려한 조치다.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선장·기관장이 되는 1급 항해사·기관사의 수급 전망은 더 암울하다. 2032년이면 1급 항해사는 필요인력의 34.1%, 1급 기관사는 24.6%만 공급될 것으로 예측됐다. 해기사 부족 문제가 가속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해기사 수급 불균형은 해운산업 전반에 큰 충격을 몰고 올 수 있다. 전 소장은 “문제를 바로잡을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고, 대처가 늦을수록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상운송 등 해운서비스 수출액은 지난해 383억 달러로, 전체 산업 중 7위를 기록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재작년엔 반도체와 자동차, 석유제품에 이은 4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