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둔화 국면에 들어선 한국 경제의 악재에 ‘금융 불안’을 추가했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의 여파를 반영한 조치로 보인다. “둔화 흐름”이라는 평가는 두 달째 유지했다.
기획재정부는 17일 발간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3월호에서 한국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대외 요인과 관련해 “중국 경제활동 재개(리오프닝) 기대감과 함께, 통화 긴축에 따른 취약 부문 금융 불안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우려 등 하방 위험이 교차하며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까지는 파장 관련 언급 없이 통화 긴축 기조만 한국 경제를 끌어내릴 수 있는 변수로 지목해 왔다.
이런 변화에 영향을 준 사건은 SVB 파산이다. 이 사태의 핵심 배경이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고강도 긴축)이라고 국내외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금리 급등으로 예금 조달 비용이 커진 상황에서 채권 투자 손실액이 커지며 SVB가 유동성 위기에 노출됐고, 이것이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을 불렀다는 것이다. 예금 전액 보증 등 미 연방정부의 발 빠른 대책 발표 덕에 어느 정도 진화되기는 했지만, 다른 은행으로 손실이 전이될지 모른다는 시장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분위기다.
정부의 향후 대응 방침 부분에서도 ‘리스크 관리’의 우선순위가 대폭 상향됐다. 지난달까지 맨 뒤였던 “대내외 리스크 관리에 만전”이 “물가ㆍ민생 안정 기반” 마련 바로 다음인 두 번째까지 올라왔다.
한국 경제가 경기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은 계속됐다. 지난해 6월 그린북에서 ‘경기 둔화 우려’를 처음 거론한 정부는 이후 비슷한 평가를 유지하다 올해 1월 “우려가 확대됐다”며 수위 조정을 예고한 뒤 지난달 비로소 “경기 흐름이 둔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처음 공식화했다. 3월호 총평은 “물가 상승세가 다소 둔화하는 가운데 내수 회복 속도가 완만해지고 수출 부진 및 제조업 기업 심리 위축 등 경기 둔화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높은 수준임이 강조되던 물가 부분이 다소 희망적인 표현으로 바뀌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석유류와 농축수산물 안정세 등 덕에 전년 비 5.2%(1월)였던 상승폭이 4.8%로 줄었다. 내수와 관련해서는 설비 투자가 1년 전보다 3.9% 감소했고 소매 판매는 전월보다 2.1% 줄었다. 2월 수출은 작년보다 7.5% 줄어 5개월째 감소세를 보였다. 특히 주력 품목인 반도체 수출이 43%, 주요 수출국인 중국 상대 수출이 24%나 빠졌다.
중국 리오프닝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얼마간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이승한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중국 경제는 리오프닝 이후 올해 1, 2월 실물 지표가 대체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내수와 서비스 중심”이라며 중국인 관광객 증가와 중국 내 정보기술(IT) 제품 수요 확대에 따른 반도체 수출의 증가 등을 중국 리오프닝 효과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