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구조조정 대처 프로토콜을 만들어야겠어."
몇 주 전 저녁, 남편과 마주 앉아 꺼낸 얘기다. 웃으며 말했지만 농담은 아니었다. 그와 내가 몸담은 업계는 최근 몰아닥친 경제 불황의 여파를 직격으로 맞는 중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어느 회사가 한 팀을 통으로 날렸다더라, 어디는 투자금을 모두 소진하고 구조조정을 시작했다더라 하는 동종 업계의 흉흉한 소식이 들려왔다. 다행히 그와 나는 아직까지 그 대상이 되지 않았으나,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이들이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실무자들이라는 점을 보면 이것이 언제까지나 남의 일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먼지가 내려앉듯 불안감이 쌓였다. 생계와 직결된 문제라서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그 경험이 가져올 심리적 후폭풍이 두려웠다. 우리는 또래 대부분이 그렇듯 취업 과정에서 눈물 젖은 사연 몇 개씩을 갖게 되었으므로,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직장을 잃는 경험은 말 그대로 영혼에 상처를 입힌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찢긴 자존감은 쉬 아물지 않는다는 것도. 매뉴얼을 만들자고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직업이 흔들린다고 인격과 인생마저 그렇게 되도록 둘 수 없었다. 사고를 막을 수 없다면 충격을 줄일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우리는 그날 밤늦도록 한 사람이 잘리면 다른 한 사람은 그날 반차를 쓰고 나와 아주 맛있는 저녁을 먹자, 쫓기듯 일자리를 구하려면 더 불안해질 수 있으니 차라리 한두 달 정도 푹 쉴 수 있도록 방학을 주자, 그걸 대비해 지금부터 매달 얼마씩은 비상금으로 빼 두자는 등의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한편, 다음 날 회사에서의 점심시간 이야깃거리는 '미먹찾'이었다. '미래 먹거리 찾기'를 농담 삼아 줄인 이 말은 요즘 나와 동료들이 가장 자주 꺼내는 주제인데, 말 그대로 명함을 뗀 개인으로서의 우리가 오래 일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나이 든 뒤에도 현역으로 일할 수 있도록 경력을 특화할 방법을 찾거나 반대로 아주 새롭게 준비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생각과 정보를 나누었다.
사무실 안에서야 다들 더 좋은 조직원, 쓸모 있는 직업인이 되기 위해 분투하지만 그와 별개로 조직 밖의 삶을 살아갈 전략은 반드시 필요했다. 이제 겨우 30대 중반에 들어선 우리에게는 아득하도록 긴 시간이 남아 있었고 그 시간 내내 회사원일 리는 없으니까. 핵심은 속한 조직의 크기나 명성과 관계없이 나 자신의 가치와 삶의 만족도에 일정 수준의 항상성을 부여할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 잘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한다 하며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있지만 무언가 결론을 내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싶다.
'구조조정 대처 프로토콜'과 '미래 먹거리 찾기'. 20대보다는 여유롭지만 여전히 40대를 낙관할 수 없는 나의 30대는 이 두 단어 사이에서 스스로를 지키면서 쓸모를 갱신할 방법을 찾기 위해 좌충우돌하고 있다. 무엇 하나 불안하지 않은 것이 없는 세상에서 최선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함이라고 스스로 다독이지만, 나이를 불문하고 최근 마주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따금 두려워진다. 우리는 정말 끝이 있는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