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무슬림→기독교 개종' 이란인 난민 인정… "박해 가능성"

입력
2023.03.17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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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기독교 개종 처벌" 난민 인정 소송
법무부 "종교적 신념과 진술 신빙 의심"
법원 "공개적 종교활동 못 해... 박해로 봐야"

무슬림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란인을 난민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면 이를 박해로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단독 송각엽 부장판사는 지난달 이란 국적 A씨가 법무부 산하 서울 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난민 불인정결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21년 5월 법무부로부터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자 김세진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와 함께 소송을 제기했다. "무슬림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A씨는 "종교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가 예상될 뿐 아니라 형제들이 유산을 빼앗으려고 나를 신고해 체포·구금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기독교 신자인 태국인 여성과 한국에서 결혼했지만, 이란은 비무슬림 여성과 결혼을 금지한다"며 "혼인의 자유 등이 침해돼 인간의 존엄성도 부정당할 것"이라고 '종교 박해 가능성'을 강조했다.

법무부 측은 A씨가 이란에서 실제 교회에 나간 게 8년간 4번에 불과하다며 종교적 신념이 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맞섰다. 더불어 "A씨의 이란 출국 경위에 대한 진술도 일관적이지 않다"며 "A씨가 가족이 있는 태국으로 가서 종교적 박해 없이 살 수도 있다"고 했다.

법원 "기독교 개종 박해... 난민 인정해야"

송 부장판사는 A씨 손을 들어줬다. 송 부장판사는 "A씨는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본질적인 차이에 대한 성찰을 거쳐 깊고 진실한 신앙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 이란인교회의 목사들도 진정성을 인정해 주고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A씨가 (종교를 숨기고 살았다면) 아버지 유산을 상속받고 태국에서 살 수 있었던 점에 비춰보면 경제활동이 난민 신청의 목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진술 신빙성도 받아들였다.

송 부장판사는 "박해를 받을 근거 있는 공포"라는 점도 인정했다. 송 부장판사는 A씨가 이란에서 이슬람교 종교행사를 하지 않으면 기독교로 개종한 사실이 드러난다는 점을 언급하며 "A씨가 종교활동을 공개적으로 자유롭게 못 하는 자체가 박해"라고 밝혔다. 이란 정부로부터 개종을 이유로 체포 등의 박해를 받을 게 명백해 보인다는 점도 고려됐다.

송 부장판사는 "아내와 태국에서 살면 된다"는 법무부 주장에 대해선 "결혼비자를 받더라도 이란에 가서 여권을 계속 갱신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태국에서 영구적으로 체류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일축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이 이례적이라고 평가한다. 개종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더라도 집행되지 않는 추세라면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등 난민 인정 사유로 종교적 박해를 인정한 판결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난민 사건을 다수 대리한 이종찬 변호사는 "'개종자라는 걸 티 내지 않으면 잘 살 수 있는데 왜 박해를 받는다고 생각하지'라는 게 기존 법원의 태도"라며 "종교의 자유를 영위할 수 없게 되는 자체를 박해라고 봤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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