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에 짓는 반도체 공장 건설 비용이 예상보다 10조 원 이상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미국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의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보조금 수령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라, 삼성의 대미 투자 매력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15일(현지시간) 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삼성전자의 텍사스주 테일러 반도체 공장 건설 비용이 80억 달러(약 10조5,520억 원) 넘게 증가한 250억 달러(약 32조9,750억 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2021년 11월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건설 비용을 170억 달러로 제시했고, 절반에 달하는 금액을 이미 테일러시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용 상승의 주원인은 인플레이션이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등이 오르면서 공장 건설 비용도 늘어났다. 소식통은 "건설 비용 증가분이 전체 비용 상승의 80%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해 내내 살인적인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미국 물가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매달 7% 이상 올랐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고강도 긴축에 올해 들어 물가상승률이 6%대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올해 상황에 따라 삼성전자의 공장 건설 비용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가 기대했던 미 정부의 보조금 지급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부는 외국 반도체 기업의 미국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원하는 반도체 지원법을 시행했지만, 지급 조건이 까다로워 외국 기업 차별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보조금을 받으려는 기업은 재무 건전성을 증명할 수 있는 수익성 지표와 예상 현금흐름 전망치 등을 제출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업 정보 유출이 우려된다. 미국 첨단무기 개발에 도움이 되는 반도체 기업에 우선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한다거나 중국에 반도체 시설 투자를 제한하는 조항 등도 삼성전자 향후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보조금을 받지 않으면 이런 족쇄를 피할 수 있겠지만 공장 건설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보조금 포기를 선택하기도 쉽지 않다.
로이터는 미 정부가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기 전에 보조금 규모를 책정한 만큼 늘어난 건설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기업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미 상무부 관계자는 이달 초 "정부 보조금으로 신규 공장 건설 비용의 최대 15%까지만 충당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반도체 보조금 지급 조건을 놓고 외국 기업 차별 논란이 지속되자 라민 툴루이 미 국무부 경제기업담당 차관보는 15일 "미국 기업에도 똑같은 조건이 적용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도한 요구로 외국 기업의 대미 투자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반도체든 청정에너지든 최근 발표된 (기업들의) 다양한 투자 계획은 투자처로서 미국의 매력을 정말 부각했다고 본다"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