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혈동물 처우, 8년째 제자리걸음

입력
2023.03.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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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사육되는 공혈견(供血犬)이라는 존재는 8년 전 우연한 기회를 통해 알게 됐다. 일본 도쿄에서 연수를 하던 중 산책봉사를 하던 보호소에서 반려견 '카호'를 만나게 되면서다. 유독 정이 든 반려견이라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궁금해하던 차 카호가 수혈이 필요한 개에게 120㎖의 혈액을 나눠줬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부가 운영하는 보호소에 들어온 노령에다 빈혈이 심했던 닥스훈트 종 개라고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일본은 이미 그 전부터 동물헌혈 문화가 있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국내 동물헌혈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알아보기 시작했다. 상황은 심각했다. 동물혈액이나 공혈동물에 대한 관리체계는 전무했고, 사육 및 채혈 기준도 제각각이었다. 국내 동물병원에 유통되는 혈액 대부분은 민간기업인 한국동물혈액은행이 담당하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관리 역시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 같은 내용을 담아 국내 공혈동물 실태를 처음으로 알렸다. (☞관련기사: 베일 속의 '네 발 천사' 공혈견)

보도가 나가고 1년 뒤인 2016년 9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동물혈액은행, 대학 동물병원, 동물보호단체가 모여 '혈액나눔동물의 보호∙관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이드라인 내용 자체가 부실하고, 이를 해당 기업의 자율에 맡긴다는 점 때문에 제정 당시부터 비판이 많았다. 또 '혈액나눔동물'이라는 용어가 공혈동물을 미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공혈견들이 뜬장에서 잔반을 먹던 환경은 개선됐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후 공혈동물 관리 내용 등을 담은 법안이 세 차례 발의됐지만 결국 입법 문턱을 넘지 못했다.

8년이 지난 지금, 공혈동물 관리는 전과 달라진 점이 있을까. 불행하게도 어떤 점도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한국동물혈액은행과 관계사 KABB가 지난 20년간 무허가 영업을 해온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국내 동물병원에는 지난해 말부터 농축적혈구, 혈장 등 동물혈액제제 공급이 끊긴 상태다. (본보 3월 9일 보도)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지난해 말 갑작스레 전혈(혈액)을 제외한 동물혈액제제를 동물용의약품으로 분류했는데, 동물용의약품 판매를 위해선 검역본부에 등록 및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해당 기업들이 이를 지키지 않은 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검역본부가 꺼내든 해결책은 또 다른 가이드라인이다. 지난달 '동물 혈액제제 허가 및 제조품질관리기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동물용의약품 제조업 허가신청 구비서류 △동물용의약품 제조소 시설기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법적 효력이 없는 데다 정작 공혈동물 관리에 대한 내용은 쏙 빠졌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검역본부는 묵묵부답이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국회입법조사처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국내 공혈견은 약 950마리 정도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는 2017년 기준이며, 이마저도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먼저 베일에 싸여 있는 공혈동물이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관리되는지 실태 조사부터 당장 시급해 보인다. 이후 공혈동물의 처우를 포함해 전국에 공급되고 있는 동물혈액의 품질 관리를 어떻게 해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이번만큼은 공혈동물 문제가 흐지부지 끝나선 안 된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