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살고 싶은 아파트, 런던 바비칸 단지의 탄탄함

입력
2023.03.16 19:00
25면

편집자주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공간들과 건축물의 소개와 그 이면에 담긴 의미를 필자의 시선에 담아 소개한다. 건축과 도시 공간에서 유발되는 주요 이슈들과 사회문화적 의미를 통해 우리 삶과 시대의 의미도 함께 되새겨 본다.


런던 한복판 2차대전 폐허의 열린 주거 단지
폐쇄성 강조한 서울의 브랜드 아파트와 대조
아파트 160만채 서울 재건축 결정에 참고돼야

모든 도시는 고유한 삶의 풍경을 지닌다. 건축가로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세계 곳곳을 답사하는 것도 여러 도시와 그 속의 삶을 관찰하고 또 우리 것을 돌아봄으로써 큰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간 탐방한 세계 속 수많은 아파트 중 어디에 가장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런던의 바비칸 주거 단지라 말한다(사진). 서울로 비유하자면 사대문 안 격인 '더 시티 오브 런던' 지역에 있는 바비칸 지구는 서기 100년 즈음 로마 제국시대 요새가 세워지면서 마을이 형성된 곳이다. 바비칸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성벽이 만들어지면서 '관문'을 의미하는 라틴어 바르베카나에서 유래되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독일군의 공습으로 일대가 완전히 폐허화되어버렸다. 황량했던 공터에는 당시 세 명의 젊은 건축가 체임벌린, 파월, 본에 의해 1965년에서 1976년 사이 단지가 채워졌다. 참고로 우리나라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가 완성된 것은 1964년이다.

바비칸 주거 단지 부지면적은 약 2.5㏊로 잠실야구장 2.5개에 맞먹는다.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500m에 달하는 부지를 둘러싸는 100~150m 길이의 판상형 아파트는 2,000가구 대단지를 형성한다. 수치상으로는 삭막한 크기의 블록이지만 실제로 가보면 주변에 위압적이거나 폐쇄적이지 않은 게 복합적 프로그램 구성과 입체적 설계의 묘미이다.

단지의 각 아파트 블록들은 지면에서 필로티로 열리어 보행자와 차량을 구분하고 상부에 주거 공간을 형성함과 동시에 3층 높이에 단지 내 모든 시설을 연결하는 보행 육교이자 휴게 발코니를 갖는다. 중앙에는 공원과 같이 울창한 녹지가 주민과 시민에게 열려 있고 치밀한 동선 계획으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필요에 따라, 따로 또 함께하기도 한다. 보행 육교 하부의 바비칸 센터는 아트 갤러리, 콘서트홀, 영화관, 공공도서관을 가지며 세계적인 문화행사들을 개최한다. 우리로 치면 예술의전당이 아파트 단지와 통합 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번잡한 도심 속 아늑한 중정형(中庭形·건물 사이 공간에 정원을 두는 형태) 공원에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행사들을 아파트 주민과 시민이 함께 어우러져 누린다는 것은 실로 색다른 경험이다. 그뿐만 아니라 옥상에 개방된 온실 식물원과 교회, 예술학교 등의 근린시설들 때문에 런던 시민들은 바비칸을 '복합 주거문화 단지'이자 '도시 안의 도시'라 부른다. 이러한 총체적인 가치들을 높게 평가하여 당국도 이곳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지어진 지 반세기가 지난 오늘까지도 여전히 잘 작동하며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바비칸 단지의 비결은 주변 그리고 공과 사의 조직방식이 탄탄하다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서울 등 우리 도시의 아파트는 주변과의 관계성, 시설의 입체, 복합화보다는 폐쇄성과 브랜드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산가치를 위해 건설사의 브랜드를 벽에 크게 박고 주변으로부터 경계 짓는 방식이다. 주변과 타인을 배제하면서 차별화를 추구하는 방식이라, 도시나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잃어버리는 것도 많다. 바비칸 같은 열린 마이크로 도시들은 상호 네트워크를 통해 매크로 도시를 만들지만 브랜드 아파트는 도시 안의 닫힌 도시라 섬과 같이 고립과 단절을 낳는다.

서울에만 총 286만여 채의 주택이 있고 그중 절반이 넘는 166만여 채가 아파트다. 이들 중 10년 이내 절반가량이 재건축 가능한 준공 후 30년이 도래한다. 앞으로 30년 우리의 거주 풍경을 다시 결정할 시간이 임박했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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