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무리한 한일관계 중재

입력
2023.03.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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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과 일본의 발표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두 동맹 간 협력과 파트너십의 신기원인 새 장(a groundbreaking new chapter)을 열었다.”

한일 양국이 지난 6일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징용) 피해 ‘제3자 변제’ 방식 합의를 발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명의 성명이다. 미국은 ‘역사적 발표’, '기념비적인 성취’ 같은 화려한 표현으로 이번 합의를 추켜세웠다.

미국이 음으로 양으로 한일관계 개선을 중재해 온 이유는 자신의 국익 때문이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에 맞서고, 인도ㆍ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제압하기 위해 한미일 삼각공조 강화가 절실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간과한 게 있다. 억지 중재가 한일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오히려 가로막아 왔다는 점이다. 1965년 박정희 정부 당시 한일 청구권 협정이 그랬고, 50년 뒤 박근혜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도 마찬가지였다.

청구권 협정 당시 미국 케네디 행정부는 아시아에 확고한 반공전선 구축을 원했고, 북한과 중국ㆍ소련의 삼각관계 강화를 경계했다. 협상을 서두르다 보니 두 나라의 차이가 분명한 역사 문제는 가능하면 회피하고 외면했다(김연철 ‘협상의 전략’). 그렇게 일본의 확실한 식민지 지배 반성 없이 어설픈 봉합을 밀어붙였던 결과가 지금의 징용 피해 배상 논란의 뿌리다.

2015년 위안부 피해자 합의 때도 유사했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 문제 같은 차이보다 훨씬 중요한 공동의 이해를 공유하고 있다”며 은근히 합의를 압박했던 이가 당시 국무부 부장관이었던 토니 블링컨 현 국무장관이다.

미국이 할 일은 한국의 손목을 끌고 와 일본 앞에 앉히고 억지 화해를 주선하는 역할이 아니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동냥 같은 돈은 못 받는다”고 할 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충고를 한국에 했어야 했다. 독일처럼 과거를 제대로 반성하지도 않고, 법적ㆍ경제적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일본에 쓴소리를 퍼부어야 했다. 상처뿐인 세 번째 한일 합의가 4년 뒤 또다시 파국을 맞을 경우 한미일 공조에도 부메랑으로 돌아올 게 분명하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