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아들 집에서 손주를 돌보려고 상경한 최선희(66·가명)씨. 난생처음인 서울살이가 9개월째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불편함이 적지 않다. 특히 손주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 근처에서 장을 보려고 할 때 더 그렇다.
지난달 19일 한국일보는 대형마트를 찾은 최씨와 장보기를 동행했다. 최씨는 마트 입구에서부터 잠시 혼란에 빠지는 모습이었다.
마트에서 최씨를 맞이한 것은 'The Limited'나 '득템' 등 의미를 알 수 없는 안내판 문구였다. 상품마다 'The Limited'라고 적힌 파란색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진열대 안내판엔 '①자주 구매하는 생필품을 상시최저가격(EDLP)으로 득템하는 상품 ②사전 대량매입, 유통마진을 낮춘 가격파괴 한정 물량 상품 ③분기별 물가 대표 상품으로 새롭게 출시된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상시최저가라면 늘 싸게 판다는 소리인 것 같은데, 리미티드, EDLP, 득템 기회는 무슨 말일까? 깨알같이 적혀 있는 가격표를 제대로 볼 수 없어, 정확한 할인율도 알기 어려웠다. 대충 물건을 담아 계산했지만, 정말 싸게 산 게 맞는지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일도 순조롭지 않다. 분식점에 들어서니 점원이 따로 주문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테이블마다 태블릿 메뉴판이 있어, 손님이 일일이 메뉴를 입력하는 식이다. 사용 방법도 직원이 알려주는 게 아니라 태블릿 안내문을 통해 익혀야 한다. △셀프로 운영 중입니다 △태블릿으로 주문해 주세요 △서비스 테이블에서 단무지·물을 챙겨 주세요 △호출이 오면 음식을 수령해 주세요 등의 안내 문구가 태블릿에 등장했다. 뭐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음식이 나왔다는 알림과 함께 불쑥 튀어나온 영어 알파벳 'PICK UP' 때문에 최씨는 당황했다. 'PICK UP대'는 도대체 뭘 말하는 것인지?
어찌저찌 물어 가며 식사를 마친 뒤 새로 문을 연 무인카페를 찾았다. 저렴한 가격으로 커피를 즐길 생각이었지만, 여기서도 기계의 벽을 넘어야 했다. 무인 키오스크는 이미 경험해 봤기에 원하는 메뉴를 고르는 것까지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엔 신용카드 삽입 위치, 컵 꺼내는 곳, 커피 배출 위치를 알 수 없어 계속 기계를 노려보고 있어야 했다. 최씨의 머릿속엔 '집에서 봉지커피나 타 마실 걸'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대형마트, 식당, 카페에서 최씨가 경험한 사례는 사실 고령층 소비자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는 문제다. 한국일보는 2일부터 7일까지 61~85세 고령자 100명을 대상으로 평소 소비생활과 관련한 심층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본보는 'PICK UP대에서 찾아가신 후 수령확인을 눌러주세요'라고 적힌 안내 화면을 제시하고, 'PICK UP대'의 뜻을 아는지를 물었다. 응답자 100명 중 60명이 "모르겠다"고 답했다.
마트 판촉 문구를 본 반응도 비슷했다. 'THE LIMITED, 지금이 바로 득템 기회'라는 문구를 보여준 뒤, 바로 이해가 되는지 물었다. "바로 이해가 된다"고 답한 어르신은 100명 중 10명에 불과했다. 22명은 "한참 봐야 이해된다"고 답했고, 나머지 68명은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어르신 심층 설문조사 결과 기사로 이어집니다.
"젊은 직원 '다다다다' 설명, 눈높이 안 맞는 진열대 불편해요"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32013150003926?did=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