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에서는 핼러윈, 크리스마스 등 기념일만 되면 한국 베이커리 뚜레쥬르생크림 케이크가 불티나게 팔렸다. 투박한 모양의 버터 케이크를 다루는 현지 브랜드와 달리 신선한 생크림을 써서 아기자기한 디자인으로 만든 한국식 케이크가 현지인 입맛을 끌어당겼던 것. 케이크 인기에 힘입어 뚜레쥬르가 지난해 12월 선보인 겨울 시즌 상품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5%나 늘었다.
현지에서는 뜻밖에 김치 크로켓, 단팥빵 등 한국식 재료를 넣은 빵도 잘 팔린단다. 뚜레쥬르를 운영하는 CJ푸드빌 관계자는 "최근 북미권에서는 현지인이 생김치를 즐겨 먹을 만큼 K푸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터라 김치가 들어간 빵에 대한 거부감도 크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올해 미국이 국내 베이커리 브랜드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의 최대 격전지로 거듭날 전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현지 베이커리가 사양길을 걷게 된 사이 한국식 베이커리가 다양한 제품과 독특한 콘셉트로 현지 고객을 확보하고 나서면서다. 두 회사는 공격적 점포 확장으로 2030년까지 미국 곳곳에서 점포 1,000개를 연다는 목표다.
미국은 점포 출점 제한이 없고, 한국식 베이커리에 대한 현지인의 선호도가 높아 업계에 '기회의 땅'으로 여겨진다. 페이스트리, 바게트 등 적은 종류의 빵을 다루는 현지 베이커리와 달리 300개 종류가 모여 있는 '풀 베이커리' 콘셉트가 경쟁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페처럼 커피와 빵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것도 한국식 베이커리만의 특색이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 관계자는 "점포에 마련한 테이블에서 커피와 빵을 즐기는 현지인이 많아 초콜릿 크루아상, 피넛크림 브레드 등 커피와 어울리는 상품이 잘 나간다"고 전했다.
파리바게뜨는 최근까지 미국에 120개 점을 오픈했고, 올해 60여 개 가맹점을 추가로 연다는 목표다. 파리바게뜨는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미드타운 등 주류 상권 위주로 들어서서 인지도를 높였고, 가맹점의 비중도 85%로 끌어올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뚜레쥬르는 86개 점으로 파리바게뜨보다 수는 뒤지지만,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한 점주가 여러 개의 점포를 운영하는 다점포 가맹점의 비율이 50% 이상일 정도로 수익성이 좋다. 현지에서 가맹점 오픈을 준비하는 40대 직장인은 "미국에서는 베이커리 가맹점이 돈 되는 사업으로 여겨진다"며 "미국 한 지역에서 스타벅스 맞은편에 뚜레쥬르가 생겼는데, 최근 매출이 스타벅스의 두 배가 나왔다더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두 회사가 미국으로 눈을 돌린 결정적 이유는 국내에서는 더 이상 사업을 확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3년부터 적용된 출점 제한 규제로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는 동네 빵집 근처 500m 이내에 점포를 열 수 없고, 매년 점포 수도 전년 대비 2%를 초과해 늘릴 수 없다. 이 때문에 파리바게뜨는 3,400여 개, 뚜레쥬르는 1,300여 개에서 몇 년째 국내 점포 수가 제자리걸음이다.
두 회사는 또 청년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를 다음 타깃으로 삼고 있다. SPC그룹은 지난해 말레이시아에 할랄인증 제빵 공장을 세우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소고기를 활용한 조리빵 등 식사 대용 상품에 힘을 싣고 있다. 뚜레쥬르는 인도네시아에서 프리미엄 전략을 통해 지난해 누적 매출이 전년 대비 80%가량 증가했다. 건강을 추구하는 현지 트렌드에 맞춰 '갓 구운 빵' 코너를 따로 두고, 현지 과일과 채소로 갓 짜낸 착즙 주스를 제공한 게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