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김포 장릉 문제 유감

입력
2023.03.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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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김포 장릉 경관 훼손으로 논란을 빚었던 인근 아파트가 준공되고 입주가 끝난 지도 벌써 수개월이 지났다. 공사중지명령에 대한 행정소송 1심 판결이 건설 시행사의 손을 들어줘 입주가 허용된 결과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모든 문제가 일단락됐다고 생각할 만하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진행 중이다.

문화재청도, 문화재위원회도 애초부터 해당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이 피해 보는 것은 원치 않았다. 경위야 어떻든, 오랫동안 새집 마련을 고대해왔을 아무 잘못 없는 수천 가구가 쟁송에 휘말려 예정된 입주를 못한 채 겨울을 맞게 되는 사태는 용납되기 어려운 부조리가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입주가 마무리된 건 안 됐을 경우의 사회·경제적 파장을 크게 줄인 셈이 됐다.

기왕 급한 불이 꺼진 만큼, 이젠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 볼 때가 됐다. 1심 판결은 입주민 피해를 시행사 손을 들어주는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향후 재판은 지금까지 지켜져 왔던 제도를 벗어나 자의적 해석으로 진행된 시행과정의 적법성 여부와 그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그 결과로 문화유산에 끼친 영향 중 경관 훼손 여부도 여전히 쟁점으로 남았다고 본다.

세계유산은 등재된 대상만 보존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제도로 반영하고 있다. 어느 나라든 개발 압력에 밀려 보존 범위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 이를 우려한 세계유산위원회는 '유산영향평가'(Heritage Impact Assessment)라는 제도를 강력 권장하고 있다. 주변 개발 때 새로 들어서는 시설들이 역사문화 환경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사전에 검토하는 절차를 거치게 한 것이다.

아울러 유산영향평가 가이드라인에 '와이더 세팅(wider setting)'이라는 개념도 반영토록 하고 있다. 유형적 대상물에 한정된 과거의 보존 방법을 벗어나 주변 환경과 주요 조망점에서 바라보는 경관을 함께 보호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경관 훼손 여부 또한 세계유산의 철학과 기준에 의해 판단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판단에 전문가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김포 장릉의 경우, 건설 시행사들이 절차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전문가 의견이 반영될 기회가 상실됐다. 조선왕릉은 입지와 배치, 왕릉 내에서 이루어져 온 전통의례가 일체화된 독특한 경관 연출이 감안돼 세계유산이 됐다. 기회가 있었다면 전문가들은 이 모든 가치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개발이 조화를 이루도록 기꺼이 지혜를 모았을 것이다.

세계유산의 보존은 세계와의 약속이다. 세계유산 지위를 누리려면 격에 맞는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개발과 보존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이 중요하다. 항소심에서는 역사문화 자원을 귀중히 여기고 품격 있는 산하를 가꾸어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혜안이 작동되기 바란다.


박경립 문화재위원회 궁능분과위원장·한국건축정책학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