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대학 강사로 일한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미리 질문지를 받고 답변을 정리해 보내주었다. 답변서 중에 ‘손톱깎기’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문과대학 100주년 기념, 학과 역사·학술사 원고를 혼자 자료 찾아 완성해서 보낸 뒤 원고료 대신 손톱깎이 세트를 받았습니다.”
정보라 소설가. ‘저주토끼’로 작년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유명 작가인 그는 ‘교수 기득권’과 싸우는 사람이기도 하다. 지난 6일 만나 ‘손톱깎기’ 원고료에 대해 묻자, “아, 보온병도 받았네요”라고 말했다. 손톱깎기와 보온병엔 학교 로고가 있었다. 교수는 한 학기 꼬박 걸린 일(원고 작성·수정)을 시키고 학교 기념품을 준 것이다.
그는 “학과 잔심부름이나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업무를 저에게 떠맡기는 일이 아주 많았는데 연세대가 강사의 업무 외 원고료를 손톱깎이 세트로 지급하는 건 참 신선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정 작가는 지난해 모교이자 오랜 강사생활을 했던 연세대를 상대로 퇴직금·수당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웹진 ‘한국연구’에 기고한 글 ‘강사는 어떻게 단련되는가’에선 슬픈 독설을 내뿜었다. “교수들은 대체 뭘 가르치나? 나보다 월급 열 배 더 받으면서?”라고.
그는 연세대 노어노문학과에서 2010~2021년 학기당 평균 6~9학점, 월 24~36시간 강의했다. “강의료는 시간당 5만3,000원 정도로 시작해서 2021년에 5만6,000원선이었어요. 준비 시간까지 계산하면 시간당 1만5,000원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12년간 시급은 3,000원 올랐고, 9학 점 기준으로 임금은 월 200만 원 정도였다. 논문 39편을 썼다. 6년간 우수 강사로 선정돼 총장상도 받았다.
2020년 연세대 정교수의 평균연봉은 1억8,000만 원(교수신문 자료). “교수는 보통 6학점 정도를 한다”는 그의 설명을 토대로, 강사보다 일을 덜하거나 비슷하게 하고 7.5배의 임금을 받았다. 6학점 기준으로는 약 11배이다. 국립대는 시간당 강의료 최저선(2023년 9만 원 이상)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사립대엔 없다. “사립대는 자율이죠. 작년에 평균 5만6,440원이었어요.”
미국 예일대와 인디애나대에서 석·박사를 했던 정 작가는 고등교육에 신자유주의가 침투한 국가 중 미국보다 한국 상황이 심각하다고 했다. “미국은 대학마다 다르지만, 제가 아는 경우에는 비정규 교수(adjunct professor)와 정규직 교수 사이의 임금 차이가 일반적으로 2, 3배 정도 됐어요. 비정규 교수라도 보통 1년 단위 연봉제에 연금계획과 건강보험에 가입되고, 공동연구실이 지급됩니다.”
그는 “한국에선 대학강사에게 건강보험도 안 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직장 건강보험이 안 되면 대출심사할 때도 무직이 된다”고 한탄했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말 대학강사에게도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자격을 부여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가 언제 될지 알 수 없다.
등록금이 오랜 기간 동결된 게 강사 처우에도 영향이 있을까. 정 작가는 “수도권 대형 사립대의 경우, 강사의 강의 분담률이 50% 전후인데, 전체 임금 중 비중이 2~5% 수준”이라며 “대학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작음에도 강의료 인상을 막아왔고, 재정 형편이 좋아진다고 해도 별도의 제도적 압력이 없는 한 강사 강의료 인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에서 교수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 묻는 사전 질문지에 그는 “몰라여 ㅠㅜ”라고 써서 주었다. 그는 총 4번 교수직에 지원했다. 2018년 연세대 노문과 교수직에 지원했을 때의 일이다. “제가 크게 충격을 받은 게 전원 불합격 처리됐다는데 공지가 없었어요. 이 과정이 끝났다는 공지가 없어요. 그걸 교수가 개인적으로 저한테 메일을 보내서 알려줬어요. 부당하고 시혜적인 태도죠. 행정조교에게 말해서 지원자 전원한테 알려야죠.”
그 외에도 황당한 일은 많았다. “교수가 교원임용 과정에서 저의 연구실적 같은 개인정보를 다른 지원자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그분이 깜짝 놀라서 저한테 전화를 해서 알게 됐죠.”
학과 안에서 만장일치가 되어야 임용되기 때문에 누구 한 명의 눈 밖에 나도 교수 임용은 어렵다. “2017년쯤 연세대에서 교수임용 공고가 날 거라고 저에게 알려주신 교수님이 저보고 소설을 쓰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딴짓하면 다른 교수들이 나쁘게 본다는 건데, 소설 쓸 시간에 연구해서 논문실적을 쌓고, 소설은 교수가 된 다음에 쓰라는 거죠.”
그 말은 환멸을 불렀다. ‘뭔데 나보고 소설을 써라 말아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기자가 “논문도 많이 쓰지 않으셨느냐”고 묻자, “논문 39편 썼어요. 그런데도 소설 쓸 여력이 있으면 논문을 쓰라는 거죠. 논문을 더 많이 쓴 사람도 있던데, 그럼 그분을 뽑으면 되잖아요. 그분도 뽑히지 않았어요. 여러 가지 많이 했는데, 여러 가지 많이 하지 말라는 거예요. 교수들한테 절대 충성하고 나는 교수가 되지 않으면 내 인생은 끝장이고 나는 죽는다, 그걸 보여줘야 한다는 이야기였어요.”
정 작가의 비판은 한국 사회를 향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삶을 살도록 하는 조건이 아니고, 전력질주를 해서 한 지점에 도달한 다음에, 계속 전력질주를 하다가 쓰러져 죽으면 본인 탓이고 능력 없는 탓이죠. 운이 좋아서 전력질주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에 먼저 이른 사람은 문 다 닫고 남들이 못 들어오게 하려고 하고요. 지금 길에서 굶어죽는 시대도 아닌데 왜 이렇게 됐을까요.” 그는 강조했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정말 하찮게 여겨요. 장애인, 성소수자에 온갖 혐오를 투여하고 적대시하는 것 보세요.”
그는 이런 구조로 인해 한국 대학 전체가 몰락하고 있다고 봤다. “수업이 불가능할 정도로 대학원생이 없어요. 일 년에 한두 명이면 잘 들어오는 거고, 이 년에 한 명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요.”
당연하다고 했다. “한국 대학원 진학은 어떤 면에서도 이득이 아니에요. 그냥 누구 교수의 제자다, 연줄을 만들어서 유학 갔다가 와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 교수가 내 자리를 마련해 주기를 바라는 그것밖에 없어요.” 미국은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자기가 졸업한 학교의 교원으로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비용도 해외 대학원 진학이 더 이득이다. “예일대에서 조교를 할 때 학비 면제받고 생활비가 나왔어요. 미국은 그래요. 한국에서는 불가능하죠. 미국이 등록금이 많아서도 아니고,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위한 정부지원이 정말 많아요. 노조(한국비정규교수노조) 자료에 보니까, 서유럽은 더 잘되어 있다고 해요. 학비가 없는 나라도 있으니까 더 잘 돼 있겠죠. 미국도 정부에서 지원하는 장학금이 정말 많아요. 소액부터 5, 6년 패키지까지요. 학술대회 가는 여비 지원금, 러시아에 일주일 동안 갔다 오는 항공료와 숙박비 지원 같은 소액 장학금도 있고요.”
한국은 어떤가. “돈 있고 생계 걱정 안 해도 되는 사람들만 대학원에 가게 됐어요. 비싼 학비를 내고 무급으로 온갖 잡무는 다하는데 거기에 비해서 교육의 질은 정말 형편없어요. 학과에 따라서 자료가 없어요. 노문과를 예로 들자면, 냉전 50년간 소련과 교류가 금지돼서 러시아어 책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장학금 지원이 충분하지 않으니까 대학원생이 러시아에 직접 가서 자료를 찾는 것은 정말 꿈도 못 꾸는 일이에요.”
그가 보고, 듣고, 겪은 사례들은 익숙하면서도 기괴한 ‘대학괴담’이다. “(같은 전공의) 다른 학교 남자 교수가 저한테 밥 사주면서 자기랑 러시아 놀러가자고 한 적도 있었고, 뭐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정 작가의 아버지는 모 대학 치대 교수였는데, 아버지 후배 친구였고 유부남이었다.
또 아는 사람 회사에 가서 4대 보험 서류를 만들어 가지고 오면 겸임이나 초빙교수로 임용해주겠다, 하는 경우도 많단다. 정 작가는 “예체능계에서 심하다고 들었어요. 스스로 그 직장보험료를 내고 소속이 되어 있다는 허위문서를 만들어 오라는 거죠.”
‘손톱깎기’ 원고료를 받은 것 외에도, 그는 교육부에 대학원과정 지원금을 신청하는 일에 동원된 적이 있다. 정 작가는 “교수가 ‘네가 뭘 좀 써줘야겠다’고만 말해서 논문을 쓰라는 얘기인 줄 알았어요. 회의에 들어가 봤더니 대학원 과정을 신설하기 위해 억대 지원금을 신청하는 업무였는데 아무 사전준비도 없이 그냥 ‘네가 뭘 좀 써줘야겠다’라고만 하고 저를 밀어넣은 것입니다. 그런 식입니다.”
대학이나 교수의 자정이 가능할지를 물었더니 비관적인 답이 돌아왔다. “지금 교수들이 자정하지 않으면 당장 다 함께 망할 지경인데 당사자들은 조교나 강사한테 떠맡기면 되니까 별로 자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정 작가가 강사 시절을 이야기하며, 유독 따뜻한 어조를 유지한 대상은 학생들이었다. 그는 남편의 간암이 재발해 갑자기 학교를 떠나게 됐다. “그때는 너무 무서워서 그만뒀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작별인사를 못했어요.” 부커상 후보에 오른 뒤에, 학교에 남아 있던 그의 우편함에 학생들이 엽서나 선물 같은 것을 넣어놓은 걸 나중에 들었다. “학교에서 그걸 저에게 보내줬어야 하잖아요.” 그는 받지 못했다.
정 작가는 연세대에서 유일한 비정규교수노조 조합원이었고 사직 후에도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7월 그가 세월호 농성장에서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비정규교수노조 임순광 당시 위원장(현 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 정책국장)을 비롯한 인사들이 옆에서 단식을 했다. 그때 노조에 가입했다. 지금의 남편이 된 임 전 위원장의 건강은 다행히 회복됐단다. “얼마 전에 검사했더니 이제 암은 없어졌지만 혈당이 확 올랐는데, (남편이) 집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거예요. 신문에 써주세요. 제가 남편 규탄한다고요.(하하)”
그는 즐겁게 싸우는 사람이다. 후배 강사들에게 할 조언을 묻자 “참을 필요 없다”고 말했다.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혼자 고민할 필요 없다”며 함께 의견을 나누고 연대할 것을 주문했다.
정 작가는 “제가 부러워하는 (노조)분회가 있는 학교들을 보면, 단체 교섭을 해요.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시행 직전 학교들이 강사들을 되게 많이 잘랐는데, 노조가 있는 부산대 같은 경우는 한명도 잘리지 않고 전부 방어했어요.” 전국 대학의 비전임교원(2022년 교육기본통계 기준)은 14만2,414명(강사 6만7,513명)인데 이들 중 1,800명 정도만 비정규교수노조 조합원이다. 수도권은 성균관대와 성공회대뿐이다.
개선은커녕 후퇴의 움직임도 있다. 정부가 지원하던 ‘사립대 강사 처우 개선비’가 올해 ‘0원’이 됐다. 강사의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을 지원해주던 금액이다. 또 일반대의 겸임‧초빙교원 활용 비율을 3분의 1 이내(현재 5분의 1 이내)로 확대하는 대학 설립·운영 규정(대통령령) 개정도 입법예고됐다. 강사법 사각지대의 겸임·초빙 교수 활용이 늘고 강사들은 더욱 밀려날 수 있다.
정 작가는 연세대 상대 소송에서 도전을 하고 있다. 퇴직금·수당 청구 금액을 5,000만 원에서 7,000만 원으로 올려서 청구 취지를 변경했다. “변호사가 교수와 강사 사이에 업무의 질적인 차이가 없으면 교수 수당 지급 기준을 강사들에게도 적용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고요, 그래서 같은 기준으로 수당을 계산해 달라고 변경했어요.” ‘강사와 교수의 노동은 같다’는 걸 법원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최근 부산대 관련 소송 2심에서 강사의 수업 준비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지 않아 수당을 인정받지 못했다.
민교협(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 연구자의 집, 교수노조 등에 소속된 교수들이 노력은 하고 있다. 이들 단체와 대학원생노조, 비정규교수노조 구성원들이 함께 2021년 11월 연구자 권리선언을 발표했고, 예술인복지법에 기반한 연구자복지법을 발의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정 작가는 그럼에도 “현재 구조가 단번에 바뀔 만큼의 움직임까지는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교수 임용에 지원하면서도 교수가 되는 게 더 좋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고 했다. 지금의 구조 속에서 자신도 ‘가해자’나 ‘착취자’의 위치가 될 수 있어서다. 그의 고민에 한국 대학의 실패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