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오늘 새벽 기차를 타고 울산에서 서울로 왔습니다. 그날의 저는 기후위기 헌법소원으로 무언가 바꿀 수 있을 거라 기대했고, 어떻게든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를 떠올리니 조금 비참하기까지 합니다. 3년 전에는 이런 오늘을 상상하고 소송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13일 서울 헌법재판소 인근 세미나실에서 열린 '기후위기 헌법소원 청구 3년 기자회견'에 참석한 윤현정(18)양은 떨리는 목소리로 속마음을 털어놨다.
이날은 윤양을 비롯한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19명이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청구한 지 꼭 3년째 되는 날이다. 2020년 3월 이들이 헌법소원을 청구할 때만 해도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으로 주목받았고, 한국의 '그레타 툰베리'들이 대담한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아직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이들이 헌법소원을 낸 건, 정부와 국회의 기후위기 대응 노력이 미흡해 미래세대의 기본권이 보호되지 못할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과 그 시행령이 청소년들의 생존권과 인간답게 살 권리, 직업 선택의 자유 등 헌법상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법에 명시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2017년 대비 24.4%감축)가 너무 낮아 기후위기를 막는 데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후 2021년 9월 기존 법은 탄소중립기본법으로 대체됐고, 지난해 2월 청소년들은 기존 헌법소원에 청구 이유를 추가했다. 탄소중립기본법 역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2018년 대비 35%감축)를 너무 낮게 책정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충실히 집행하도록 강제하는 조항이 없다는 문제 제기도 더해졌다.
그 이후에도 헌재의 심리는 진전이 없다. 법률대리인인 이병주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는 "중간에 청구 이유를 추가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헌재의 결정은 다소 늦어지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낸 청소년들이 좌절하는 게 보여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청구인들은 기다림 속에 성장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오민서(17)양은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 됐다. 오양은 예전처럼 청소년의 행동만으로 큰 변화가 일어날 거라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법과 제도가 중요함을 깨닫고 공부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눈에 띄게 심각해진 기후위기를 보며 "무력감과 슬픔이 반복해서 쌓였다"고 말했다. 그가 살고 있는 춘천에서는 최악의 가뭄으로 소양강 댐이 바닥을 드러냈고, 역대 최고의 폭우로 누군가 목숨을 잃는 것도 목격했기 때문이다.
3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김유진(21)씨는 청년이 되어 대학에서 환경과학을 공부하고 있다. 김씨는 "고등학생 때보다 더 기후위기가 두렵다"고 했다. "기후와 생태가 무너지고 있음에도 사회는 변화하지 않는 걸 보며 '과연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는 것이다.
청구인들은 이날 다시 헌재 앞에 모여 빠른 판단을 촉구했다. 국내외 법률가 215명(국내 184명, 국외 31명)의 지지 서명도 헌재에 전달했다. 서명에는 '기후변화라는 위기로부터 국민들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헌재의 신속한 판단을 요청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서경(21)씨는 "더 늦으면 우리의 헌법소원도, 헌재의 판결도 모두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