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승인 출장·지각’ 봐주다 갑자기 해고... 법원 “과도한 징계”

입력
2023.03.13 11:30
"무조건 근로자에게만 책임 묻기 어려워"

장기간 업무 지침을 위반하거나 근태에 소홀했더라도 직원에게만 책임을 물어 갑작스럽게 해고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 이상훈)는 최근 서울의 한 관제센터 프로그램 개발·보수업체인 A사가 부당해고 구제재심판정을 취소해달라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2016년 1월 A사에 창립 멤버로 입사한 B씨는 영업 및 계약 담당 부장으로 일하면서 프로젝트 점검, 유지·보수 인력 관리, 계약 등 업무를 맡았다. A사는 2020년 6월 미승인 지방 출장 및 연차 사용, 잦은 지각과 장기간 무단결근 등 근태 불량을 이유로 B씨를 해고했다. B씨가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에서 '부당 해고' 판정을 받자, A사는 "해고사유로 인해 이미 B씨와 신뢰 관계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재심 판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그러나 중노위와 마찬가지로 직원인 B씨 손을 들어줬다. B씨의 업무 특성상 부적절한 행위에는 회사 책임도 일부 있음에도 과한 징계가 내려졌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미승인 출장은 업무상 절차 위반에 불과하며 B씨는 기존 업무 관행대로 출장 관련 비용처리를 신청한 것으로 보이고 액수도 경미하다"며 "회사는 통근 거리가 먼 직원의 출근 문제를 장기간 문제 삼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B씨와 회사 대표 간 장기간 이어진 감정 대립이 B씨의 업무 태도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도 고려했다. B씨는 오랜 기간 근로계약서 작성이 미뤄져 2020년 무렵 공황장애와 우울증 증세가 심각했다. 재판부는 "해고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여야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해고사유인 비위행위를 전적으로 B씨 책임으로 보긴 어렵고, B씨가 회사 초창기부터 장기간 회사에 기여했으므로 그의 사정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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