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은행권 견제 카드로 검토하고 있는 소규모 특화은행 설립 구상이 암초에 맞닥트렸다. 대표적 특화은행 사례로 거론했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면서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 소규모 특화은행 도입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화은행은 스타트업 등 특정 소비자에게 시중은행의 일부 업무만 수행하는 전문은행이다. 당국은 특화은행이 은행권의 과점적 구조를 흔들 '메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제는 특화은행의 대명사격이 SVB라는 점이다. 벤처기업에 예·적금을 받고, 이를 토대로 유망 벤처기업에 대출을 내주거나 지분을 투자하는 등 특화은행 역할로 5,000개 안팎의 미국 은행 중 16위 규모로 급성장했다. 금융당국이 2일 열렸던 은행권 TF 실무작업반 회의에서 해외 특화은행 사례로 SVB를 내세웠던 배경이다.
심지어 특화은행에 팔을 걷어붙인 지방자치단체도 SVB를 표본으로 삼은 차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인 대전 기업금융중심은행 설립이 대표적이다. 그간 기업금융중심은행의 롤 모델로 SVB를 꼽은 이장우 대전시장은 1월 미국 SVB 본사를 방문해 연말 설립될 대전투자청에 출자해 줄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SVB가 파산하면서 특화은행 도입 구상이 어그러지고 있다. 고금리 기조 지속 등 금융환경과 경기변동에 취약하다는 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된 탓이다. 은행권 TF 실무작업반 관계자도 2일 회의에서 특화은행에 대해 "지급결제 업무만으로는 수익성 확보가 어려워서 건전성이나 소비자보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특정 여신 부문에만 집중한 은행은 자산 건전성 충격을 분산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는데 불과 며칠 만에 현실이 된 셈이다.
금융당국은 일단 SVB 사태를 예의주시하겠단 입장이다. 다만 특화은행의 취약점이 불거진 상황에서 추진 동력을 되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향후 소규모 특화은행 논의 테이블에 SVB 사태도 올려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