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동의안 표결 이후 내홍을 겪는 와중에 경기지사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전모씨가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설상가상의 위기에 처했다. 강제동원 피해배상 방안을 고리로 한 대정부 비판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지만, 대표직 사퇴를 포함한 이 대표의 도의적 책임을 요구하는 비명계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12일 "고인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죽음까지 이용하고 있다"며 "악마를 보았다"고 말했다. 전씨 사망을 두고 여권은 물론 당내 일각에서도 이 대표 책임론을 거론하는 것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이 관계자는 "검찰의 억울한 사냥이 더 이상 없도록 굳세게 막아내겠다"며 "이 대표는 남은 사람들을 끝까지 책임질 것"이라고 했다. 대표직 사퇴를 포함한 거취와 관련한 주장을 일축하면서 '정면돌파'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섯 번째 이어진 측근 사망에 대해 이 대표가 '검찰 책임론'만 반복하는 것에 답답함을 호소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이 대표는 측근 사망 다음 날(10일)에 "이게 검찰의 과도한 압박 수사 때문이지 이재명 때문이냐"고 말했다. 비명계 의원들은 이에 "유족과 민심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방어에만 급급한 발언"이라는 비판적 인식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 비판도 나왔다. 김해영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 대표 같은 인물이 민주당 대표라는 사실에 당원으로서 한없는 부끄러움과 참담함을 느낀다"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당이 이재명 방탄을 이어간다면 민주당은 그 명(命)이 다할 것"이라고 직격했다. 윤영찬 의원은 10일 페이스북에 "이 대표가 말한 대로 검찰의 무리한 수사 때문이라면 속히 밝혀야겠지만, 이 대표 본인이나 주변에서 고인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 있었다면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 대표의 도의적 책임을 주장했다.
사법리스크에다 측근 사망이라는 돌발 변수까지 반복되고 있지만, 이 대표가 별다른 입장 표명이나 해법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 당내 불안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윤준병 의원은 이날 당내 이 대표 사퇴론에 대해 "5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야당 대표를 죽이겠다고 칼춤을 추어대는 검찰의 잘못"이라며 "완전히 본말이 전도된 맹랑한 공격"이라고 반박했다. 친이재명계 좌장 격인 정성호 의원은 전날 "우리 모두 성찰해야 한다"며 자중의 목소리를 냈다.
이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는 대정부 비판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면서 국면 전환을 노리고 있다. 오는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앞서 제3자 변제 방식의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에 대해 화력을 집중하면서다.
이 대표는 전날 서울광장에서 열린 정부 규탄집회에서 "이번 강제동원 배상안은 일본에는 최대의 승리이고 대한민국에는 최대의 굴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세계에 자랑할 대한민국이 일본에는 '호갱'이 되고 말았다"고도 했다.
아울러 사무총장 등 당직 개편도 비명계를 달래기 위한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 지도부 인사는 "당직 개편 가능성을 닫아두지는 않고 있다"며 "다만 외부 압력에 떠밀려 하는 모습이 되지 않으려면 명분과 시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법리스크가 여전한 가운데 당직 개편은 근원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비명계 의원들이 주축인 '민주당의 길'이 14일 토론회를 재개하고, 이 대표가 17일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법정에 출석할 예정이다. 아울러 측근 사망으로 인해 민주당 지지율이 출렁일 경우 '이재명 책임론'이 분출할 수도 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여론조사에서 전씨 사망의 여파가 확인된다면 이 대표 거취와 관련해 상당한 압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