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가장 엄격한 총기규제법을 가졌다는 독일도 '총기 난사'의 위험에선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9일(현지시간) 최소 8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무차별 총격 사건이 벌어지면서 총기법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이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도 막지 못한 사실이 드러난 탓이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독일 정치권에서 총기규제법의 실효성을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고 11일 보도했다. 이틀 전인 9일 오후 9시쯤, 독일 북부 함부르크의 여호와의 증인 사무실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이 계기가 됐다. 필립 푸스츠(35)는 당시 종교 모임을 하던 여호와의 증인 신도 36명을 향해 총기를 난사해 7개월 태아를 포함, 총 7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도 현장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수혈을 거부하는 이 종교의 교리를 감안하면,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과거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던 범인 푸스츠는 자신이 집필한 책을 성경과 비교하면서 기존 신도들과 관계가 틀어졌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18개월 전부터 여호와의 증인 지부 사무실에 발길을 끊고,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비극을 막을 기회는 분명히 있었다. 함부르크 경찰서에는 "(범인이)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다"는 익명의 투서가 날아들었다. 지난달 7일 그의 아파트를 찾은 경찰은 관련법상 금고 안에 보관돼 있어야 할 총기와 탄약이 부주의하게 이곳저곳에 놓여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신적 문제에도 불구, 치료를 거부하는 등 불안 징후가 있었던 것도 파악했다. 하지만 '구두 경고' 조치만 내렸다. 총을 압수할 만한 근거는 충분치 않았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여론은 '더 강력한 총기법이 있었다면 이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극우 성향의 반정부 세력 25명이 국가 전복을 모의한 혐의로 체포된 데 이어, 이번 사건까지 겹치면서 독일 연립정부 내에선 총기규제 강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정 참여 정당인 녹색당의 이레네 미할릭 의원은 "총기규제법이 총격을 100% 막을 순 없으나, 그러한 사람들(총격범)이 총기를 (아예) 손에 넣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가 행해지고 있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현재 독일에선 총기 면허를 받기 전, 25세 미만의 경우엔 심리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녹색당은 한 발 더 나아가 "총기 소지자라면 나이를 불문하고 정기 검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연정을 이끄는 사민당 소속 낸시 페이저 독일 내무장관은 지난 1월 총기규제를 강화하는 개정안 초안을 내놓았다. 개인의 반자동 소총 소유를 전면 금지하고, 당국의 무기 압수 권한을 확대하는 게 골자였다. 그러나 친기업 성향인 또 다른 연정 파트너, 자민당의 반대에 직면해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독일 내 총격 사건은 미국보단 드물어도 적지 않은 편이다.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연평균 155명에 달한다. 약 100만 명이 570만 개 총기를 소유하고 있으며, 1인당 총기 소지 비율도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