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성산소(free radical)의 발견은 1970~1980년대에 나온 의과학 업적의 하나로 꼽힌다. 생명체의 호흡ㆍ대사 등의 과정에서 활성산소가 발생하며, 이것이 염증이나 노화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유전자(DNA) 손상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된 것이다.
이에 따라 활성산소 발생을 억제하거나 줄이면 건강을 증진하거나, 질병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모았다. 일부에서는 이런 성분이 든 음식을 먹으면 활성산소를 억제해 암ㆍ동맥경화ㆍ백내장ㆍ황반변성 등 질병과 노화에서 해방되고 영원한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섣부른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물질, 즉 ‘항산화 성분’도 밝혀졌다. 비타민 C, 비타민 E, 베타카로틴, 타우린, 폴리페놀, 셀레늄, 카테킨, 코엔자임Q10 등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이들 항산화 성분을 함유했다는 식품, 영양보충제들이 개발돼 팔렸다. 심지어 식료품점들은 딸기에 항산화 성분이 있다는 광고를 내붙이는 소동도 있었다.
하지만 활성산소와 항산화 성분의 효과를 검증하는 추가 연구들이 이뤄지면서 초기의 주장들과 엇갈리는 사실들이 속속 밝혀졌다.
몸에서 활성산소가 발생하는 것은 맞지만 인체가 가진 항산화 효소와 물질 등으로 해결할 수 있으므로 항산화 성분이 든 영양보조제를 굳이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지나친 항산화제 복용이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연구들도 발표됐다. 요즘 활성산소나 항산화제는 학자들의 중요 관심 분야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권위 있는 의학 저널에 항산화를 다룬 논문이 발표되는 사례도 보기 힘들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항산화 효과를 앞세운 영양보충제를 판매하는 사례도 과거보다 줄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항산화 성분에 대한 관심이 높고, 제품을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활성산소는 생명체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호흡, 대사, 운동, 스트레스, 자외선 등에 의해 계속 발생하기 때문이다. 흡연, 방사선, 대기오염, 일부 약물, 말라리아 감염 등 활성산소 발생을 촉진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활성산소라는 말만 들으면 유해 세균이나 바이러스처럼 퇴치해야 할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활성산소는 오로지 나쁜 작용만 하는 것이 아니며, 백혈구의 면역 작용, 근육 재생 등 긍정적인 역할도 다양하게 한다.
이 때문에 우리 몸은 활성산소를 만들어내는데, 너무 많으면 자체 항산화 물질을 이용해 조절한다. 인체의 천연 항산화제 중 하나가 ‘빌리루빈’이다. 적혈구가 수명을 다한 뒤에 만들어진 물질인 빌리루빈은 대부분 대변으로 배출된다. 적혈구 부산물인 빌리루빈은 아무 쓸모가 없으며 최대한 빨리 대변으로 배출하는 것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적혈구는 산소를 운반하고, 수명을 다한 뒤에는 빌리루빈으로 바뀐 뒤 항산화 작용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빌리루빈 외에도 인체에는 항산화 작용을 하는 물질이 여러 가지 있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유전자에는 25억 년 전 지구 대기 중 산소가 증가할 때 고생물들이 갖추기 시작했던 적응력이 새겨져 있다. 인체의 산소 활용력과 활성산소 처리 능력은 믿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