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부자증세’를 핵심으로 하는 2024 회계연도 연방 예산안을 공개했다. 모두 6조9,000억 달러(약 9,000조 원) 규모로, 향후 10년간 2조9,000억 달러의 연방정부 적자를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다만 예산안 편성 및 심의 권한을 가진 의회에서 공화당 반대가 극심해 원안대로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
미 백악관이 9일(현지시간) 의회에 제안한 새 예산안에선 8,420억 달러(약 1,100조 원) 규모의 국방 예산이 먼저 눈에 띈다. 평시 규모로는 사상 최대 국방예산이다. 여기에는 미국 및 동맹의 안보를 위한 핵 억제력 유지 예산 377억 달러, 러시아 침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7억5,300만 달러 등이 포함됐다. 또 중국의 도전을 우선순위로 놓고 인도태평양사령부에 153억 달러의 예산 배정을 요청했다.
의료비 등 사회복지 예산도 크게 늘렸다. 재원은 부자와 대기업 증세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먼저 연소득 40만 달러(약 5억3,000만 원)가 넘는 부자에게 부과하는 메디케어(공공의료보험) 세율을 3.8%에서 5.0%로 인상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또 40만 달러 이상을 벌 경우 최고 소득세율을 37.0%에서 39.6%로 인상했다. 상위 0.01% 자산가들에게는 최소 25% 세율을 적용한다. 이른바 ‘억만장자세’다.
기업 법인세율은 21%에서 28%로 높이고, 석유 및 가스 회사에 대한 310억 달러 보조금과 세금 혜택은 없앤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으로 재정 적자를 줄일 수 있다는 게 바이든 행정부 구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예산안 공개와 관련해 펜실베이니아주(州) 필라델피아를 찾아 “우리는 가장 부유한 기업들에게 공정한 몫을 지불하도록 요청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제안한 예산안은 단순히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그들이 파산하지 않도록 돈을 절약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를 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 지출 삭감을 주장해 온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대통령은 수조 달러의 새로운 세금을 내놨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는 의회와 정부 부채한도 상한(31조 4,000억 달러) 증액 협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오는 10월부터 적용될 새 예산안 협상까지 더해지면서 백악관과 의회의 힘겨루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