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약속한 첨단 기업 보조금을 의식해 이에 준하는 금액을 유럽 기업들에 지급할 예정이라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린테크(신재생 기술) 기업들이 인센티브를 노리고 미국행을 검토하자 방어 조치에 나선 것이다.
EU 집행위원회는 그린테크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규정을 완화하는 ‘한시적 위기 및 전환 프레임워크’를 채택해 시행한다고 밝혔다. 친환경 기업들에 2025년 말까지 ‘충분한’ 보조금을 지급해 유럽에서 투자를 지속하도록 하는 것이 계획의 목표다. WSJ는 “약 3,690억 달러(약 489조9,213억 원) 규모의 인센티브와 친환경 에너지 자금이 투입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이전에는 각 회원국이 자국 진출 기업에 보조금을 주려면 EU 승인이 필수였고, 심사 절차와 요건 모두 까다로웠다. 이번 대책으로 그린테크 분야에 한해 빗장이 풀렸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집행위원은 “최소 3개 회원국에서 프로젝트를 하면서 전기차 배터리·태양광 패널·풍력 터빈 등을 다루는 기업이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의 가장 큰 특징은 ‘매칭(Matching) 보조금 제도'다. 유럽 역외로 투자를 전환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한해 ‘제3국에서 받을 수 있는 액수’만큼의 보조금을 회원국이 지급한다. 그린테크 기업을 미국에 뺏기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난해 8월 미국 의회가 승인한 IRA는 미국 내 신재생에너지나 전기차 기업에 보조금·세액공제 등 혜택을 주는 법안으로, 북미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미국 부품을 써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EU는 “차별적 보호무역주의”라고 비판하면서도 기업 ‘엑소더스(해외 유출)’에 떨어야 했다.
이번 대책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올해 1월 미 IRA에 대항해 꺼내든 ‘그린딜 산업계획’의 일부다. 매칭 보조금 제도로 기업에 IRA에 상응하는 혜택을 줘 미국으로 향할 유인을 덜면서 유럽 친환경 산업 경쟁력까지 강화한다. EU는 오는 14일에는 그린테크 생산시설의 신규 인허가를 간소화하는 탄소 중립산업법 등의 초안도 공개한다.
한편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10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만나 IRA 우려 해소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