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표이사(CEO)를 뽑는 과정에서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KT가 '정권 코드인사' 논란에 빠졌다. 회사를 이끌어갈 주요 경영진에 윤석열 대통령과 가깝거나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잇따라 발탁하면서다. 국회의원 자녀 취업청탁 논란과 정치권 쪼개기 후원으로 핵심 경영진이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 또다시 불거진 정권 눈치보기 논란에 "정치권 영향에서 벗어날 의지 자체가 없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KT는 사외이사 후보자로 추천됐던 임승태 법무법인 화우 고문이 스스로 물러났다고 10일 밝혔다. 후보자 추천 이틀 만이다. 임 고문은 KDB생명 대표이사 후보로도 내정된 상태라 해당 직무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는 입장을 내놨다.
앞서 임 고문이 사외이사 후보자로 이름을 올리면서 정권 눈치보기 논란에 불이 붙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대선캠프 특보 출신으로 경제정책 자문을 한 친정부 인사다. 임 고문이 KT 사외이사와 함께 KDB생명 대표이사로도 내정된 것이 알려지면서 문제는 더 커졌다. KT는 정관이나 법률상 겸직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시민사회는 강하게 반발했다. 통신사에 대한 전문성이나 사외이사 역할을 고려하지 않고 정권에 가까운 인사를 뽑았다는 지적이다.
윤정식 한국블록체인협회 부회장이 회사 계열사인 KT스카이라이프 TV 대표로 내정된 것을 두고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그는 서울 충암고 출신으로 윤 대통령과 동문이다. 참여정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지냈던 이강철 전 사외이사나 구현모 대표와 가까운 벤자민 홍 전 사외이사가 CEO 선임을 앞두고 잇따라 사표를 낸 것도 결과적으로 정치권 압박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주호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팀장은 "사외이사나 계열사 사장 후보자를 보면 전문성보다는 정권 입맛에 따른 코드인사라는 의문이 생긴다"며 "KT는 특히 정치권과 엮인 사법적 문제가 많은데 스스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KT는 이외에도 여러 돌발변수를 마주했다. 현직인 구현모 대표와 CEO 후보인 윤경림 KT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사장)이 한 시민단체로부터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하면서 조사를 받게 됐다. 수사 결과에 따라 경영 행보에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
31일 열리는 주주총회 결과는 더욱 예측하기 어렵다. KT는 이날 윤 사장 CEO 선임안과 이사회 구성 안건을 주주 표결에 부친다. 지분율 약 10%로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반대표 행사가 유력하다. 최근에는 'KT 우호세력(백기사)'으로 평가받았던 2대주주 현대차그룹조차 CEO 선임안에 부정적 입장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이사나 사외이사 선출에 대주주 뜻이 반영돼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는데, 사실상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에 힘을 실어준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현대차그룹의 KT 보유지분은 약 7.8%다.
반면 회사 지분 비중 57%를 차지하고 있는 소액주주들이 정치권 외압에 맞서 500만 주 모으기 집단행동에 돌입하면서 윤 사장에게 힘을 싣고 있다. 일부 소액주주들은 윤 사장에게 면담을 요청해 연대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운명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 윤 사장은 주주와 여론을 우호적으로 돌려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첫 번째 조치로 "CEO 취임 이후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해당 내용을 공시하면서 못 박았다. 네덜란드 연금투자회사 APG가 제안한 정관 변경안도 받아들였다. 자사주를 이용해 다른 회사 상호주를 취득할 때 주총 승인을 얻는 내용이다. 자사주를 다른 회사 주식과 맞교환해 경영진에 우호적인 지분을 확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