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나무에 봄소식이 열리고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조롱조롱 매달려 봄을 알리는 어린 꽃봉오리가 기특하기만 하다. 잠시 따스한 날씨에 철없이 고개를 내민 꽃망울, 잎망울은 곧 들이닥칠 꽃샘바람을 알고 있을까? 계절이 바뀔 때면 불어오는 바람들이 있다. 꽃이 필 무렵에 분다는 '꽃바람', '꽃샘바람'이 있고, 이른 가을에는 '색바람'과 '서늘바람'이 분다. 철 따라 온다는 '가을바람', '겨울바람'은 이름에서조차 계절이 보인다. 그런 바람은 어느 계절의 끝자락이었을까? 혹은 다가올 계절이 보내는 전령인 것일까?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기세를 빗대어 '바람이 일다, 바람이 불다'고 한다. '바람 부는 대로'는 때를 잘 맞추어 일을 벌여 나간다는 뜻이다. '민주화 바람, 자유화 바람'과 같이 사회적인 유행이나 분위기를 드러내는 예가 있다. 반면에 좋은 기회를 알지 못하고 분위기를 잘못 타는 일을 지적하는 '바람 부는 날 가루 팔러 가듯'이라는 재미난 말도 있다.
기분 전환을 위해 바깥을 다니는 일을 '바람을 쐬다'고 하듯, 바람은 변화의 계기로 이른다. 만약 변화가 없는 정체된 상황에 있다면 '바람 한 점 없다'고 한다. 한편, 분위기를 타고서 들뜬 마음에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바람이 잔뜩 들었다'며 지적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바람을 일으킬 힘은 없으면서 남을 부추겨 허황된 짓을 꾀할 때 '바람을 넣는다, 바람을 잡는다'며 경계한다. 물기가 빠져 푸석푸석하게 된 채소를 '바람이 들었다'고 하는 말에서 보듯, 훗날을 염려하며 변화를 미리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바람은 변화를 일으키는 것뿐만 아니다. 삶을 유지하는 그곳에 바람이 있다. 축구공이나 자전거 바퀴는 '바람이 빠지면' 제 기능을 못한다. 있어야 할 곳에 버티고 있는 바람은 현재와 미래를 잇는 힘이 된다. 다만 기억할 것은, 바람은 동기도 동력도 없이 그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타갈로그어에서는 들뜨고 설레는 생각이 있을 때 '뱃속에 나비가 날아다닌다'로 표현한다고 한다. 우리말에도 작은 바람을 나비의 날갯짓이라 하니 세상 어디서나 사람의 마음은 마찬가지인가 보다. 초등학교 작은 교실에서 새 반장이 뽑히고, 어느 집 화분에서는 밤새 초록 싹이 빠끔히 고개를 내미는 때이지 않은가? 그 어떤 가능성을 부르는 작은 바람일지라도 넉넉히 기대할 만한 3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