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한 인간의 존재 속에서 엄마란 그가 만난 사람들 중에 결단코 가장 이상하고 예측이 불가하며 파악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는 '엄마'라는 역할이 그만큼 한 사람을 개인으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억압하기 때문일 터다.
하재영(44) 작가는 과감하게 그 불가능성을 가능의 영역으로 소환한다. 신간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에서, 엄마를 인터뷰하며 그 삶을 페미니즘으로 다시 읽는다. 엄마의 삶에서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스스로 선택할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결혼과 출산, 시집살이를 다룬 책의 대목을 살펴보자.
"엄마의 결혼은 아버지들의 담합으로 성사되었고 출산은 선택의 여지 없이 이루어졌으며 시집살이는 상의 없이 결정되었지만, 그 일은 엄마의 삶에서 표면이지 내면은 아니다. 엄마가 들려주는 내면의 이야기에는 '순응하는 자', '억압받는 자'와 같은 피해자/희생자의 정체성이 없다. 그녀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원한을 품지 않았다. 엄마는 자신의 표현처럼 '생각하는 자', '질문하는 자'로 살았다. (211쪽)"
"엄마처럼 살지 않기를 다짐하면서, 엄마처럼 살기를 소망한다"는 하 작가와 그의 어머니인 고선희(68)씨를 지난 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_ 책의 큰 구조는 '엄마의 구술-딸의 해석'이에요.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요.
하재영(이하 하)="전작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2020)'를 쓰면서 아내, 며느리, 엄마라 불리는 이들의 집안에서의 지위와 역할, 자리에 대해 썼어요. 그러면서 '나의 엄마'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죠. 인터뷰를 할 때 엄마에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그때 기분이 어땠어, 어떤 생각을 했어'였어요. 어차피 사실과 정보는 다 알고 있고, 그것 너머를 질문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이야기에 진실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엄마가 경북 구미에 사시는데, 2년 전에 일주일 동안 머물며 하루에 너덧 시간씩 이야기를 하고 그 뒤로도 꾸준히 전화 통화를 했죠. 저는 엄마의 사적 기록을 옮기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 여성인 제가 새로운 관점으로 엄마의 삶을 해석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_ 어머님은 딸의 제안에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고선희(이하 고)="독자로서 책을 읽기만 했지 제가 이야기의 주체가 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내 이야기가 뭐 쓸 게 있나 싶어 당황스러웠죠. 딸이 필요하다고 하니 마지못해 수락했어요. 그런데 딸이 글 쓰는 과정을 보니 제가 생각했던, 인생을 회고하는 종류의 글은 아니더군요. 나 스스로가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글이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원고를 처음 보고서 딸에게 말했어요. '정말 고맙다. 정말 그냥 살았을 뿐인데, 네가 내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어줬어.'"
하="엄마 이야기를 텍스트로 담고, 다른 페미니즘 사상이나 이론을 통해 엄마의 경험을 개인적 맥락뿐 아니라 사회적 의미에서 살펴보고 해석해나가는 과정이었어요. '공동회고록'이라고 부제가 달려 있지만, 모녀 관계에 대한 사회학적인 논픽션에 가깝죠. 엄마는 엄마의 얘기를 하지만, 저는 그 얘기를 또 다른 여성들에게 한다고 생각했어요."
_ 인터뷰와 글 작업이 진행되면서,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겠어요.
고="내 딸이 어떠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만 하지, 사실은 엄마도 딸을 속속들이 알지 못해요. 어릴 적에는 칭찬을 정말 안 해주는 엄마였죠. 그런데 지금은 딸이 자랑스러워요. 딸의 글쓰기를 응원하게 됐어요. 딸이 글 쓰는 게 싫지는 않지만, 그간 딸이 써온 주제가 동물권이나 여성 문제거든요. 엄마다 보니 혹시나 악플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까 봐 무난하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면 안 되겠냐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책이 나오는 과정을 보면서 '내 딸은 내 생각과 달리 조그만 일이라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_ 세상에서 보편적으로 이야기되는 엄마 이야기가 아닌, 진짜 엄마 이야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하="엄마에 대한 이미지가 '희생하고 헌신하는 전통적 모습'과 '억척스럽고 강인한 모습' 두 가지로 고정돼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세상 어느 엄마도 그 두 가지에 정확히 부합하지 않잖아요. 미디어가 소비하는 어머니의 이미지인 거죠. 어머니에게 따라붙는 '희생' '헌신' '사랑' 같은 언어를 가능하다면 전복하는 모녀 관계를 책에서 쓰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