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성매매가 합법화된 시기는 2000년이다. 해상무역 발달 탓에 수도 암스테르담의 홍등가에선 수백 년 전부터 성매매가 활발히 이뤄졌던 만큼, 이를 음지에 두고 방치할 바엔 차라리 '양지'로 끌어올려 관리하겠다는 결정이었다.
그로부터 23년이 흘렀지만, 정부의 합법화 조치가 성매매 산업 및 시설에 대한 혐오적 시선을 불식시키진 못한 듯하다. 최근 새삼 뜨거워진 암스테르담 홍등가 이전 논란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논쟁의 주요 지점은 세 가지다.
①암스테르담시(市)는 도심 길거리에 늘어선 홍등가를 교외의 대형 건물에 일제히 입주시킬 계획이다. 일종의 문화 센터, 이른바 '에로틱 센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매매를 '문화'로 접근하는 태도가 맞느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②시는 '성매매 여성 안전을 고려할 때 취객 등 위험 요인이 많은 도심보단 한적한 곳에 센터를 건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외곽으로 밀어내는 건 오히려 성매매에 '혐오 낙인'을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③무엇보다 센터 건립 후보 지역 선정이 쉽지 않다. 주민들은 '왜 우리 동네냐'면서 거칠게 막아서고 있다. 에로틱 센터 설립이 진전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펨케 할세마 시장이 이끄는 암스테르담시는 좁은 강줄기를 따라 늘어선 '드 발렌' 거리의 성매매 업소 249곳 중 100곳을 에로틱 센터에 입주시킨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시는 최근 센터 건립 후보지 세 곳을 추려 시의회에 보고했다. 기존 위치에서 7~8㎞ 떨어진 쥐다스 지구 등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에로틱 센터 후보지 선정 과정에서 경찰 등 전문가 그룹과 충분히 협의했고, 주민 안전 등에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시가 밝혔지만, 반발 움직임은 누그러질 기미가 없다. 후보지 선정 절차는 같은 이유로 이미 여러 차례 지연된 바 있다.
가장 거세게 반대하고 있는 건 유럽의약품청(EMA)이다. EMA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영국 런던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이전했다. EMA는 "(센터가 건립되면) 마약 거래, 취객, 무질서한 행위 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EMA 이전 당시 네덜란드 정부가 '보안과 평온'을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맞서고 있다.
시는 센터 건립의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성 노동자들에게 안전한 작업장을 제공하고, 성 노동자들의 지위를 향상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업장 안이 훤히 보이는 유리문 탓에 성매매 여성들이 행인들의 조롱 및 구경 대상이 돼 버렸고,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취객 등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다는 점에서 교외 지역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별도의 교외 건물' 자체가 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라는 지적이 많다. 매춘정보센터(PIC)는 성명에서 "도시 맨 끝으로 성 노동자들을 밀어내는 건 '성 노동이 부끄러운 일이며,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고 밝혔다. 다수의 성매매 종사자도 시의 계획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할세마 시장이 '여성 안전'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실제로는 '네덜란드 이미지 개선'이 진짜 목적이라는 의심도 나온다.
시는 에로틱 센터에 요가 센터, 미술 전시장 등을 함께 배치해 성매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디데릭 붐스마 기독민주당 대표는 이를 '섹스 디즈니랜드'에 비유하면서 "매춘을 지나치게 낭만화하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