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열차 승차권 한쪽 귀퉁이에 적힌 이런 문구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도중하차전도무효.'
일종의 운송약관이었다. 그런데 도통 그 뜻을 알기 어려웠다. 친절하게 한글로 써준 것까지 좋았으나, 이리저리 띄어쓰기 해가며 퍼즐 맞추듯 머리를 굴려도 풀리지 않았다. 도중에는 하차하기 전에도 무효? 어디서 하차? 전에도 무효라면 후에는 유효? 유효라면 다시 쓸 수 있다는 거?
뜻을 알게 되기로는 일본에서였다. 거기는 한자로 적어 놓고 있었다. '下車前途無效(하차전도무효).' 다만 우리와 달리 앞에 '도중'이 빠졌다. 그제야 무릎을 쳤다. '하차(下車)하면 전도(前途)는 무효'라고 읽어야 했다. '전도'가 문제였던 것이다. 전도는 '앞으로 남아 있는 길'이라는 말이다. 정한 목적지에 이르지 못해 내리더라도, 그것은 내린 사람의 사정이니, 남은 거리의 운임은 환불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아마도 열차가 운행된 초창기에는 자주 벌어진 일이었던 모양이다. 잘못 타서, 갑자기 일정이 바뀌어서, 열차에서 내리자면 표 값이 아까웠을 것이고, 남은 거리만큼의 운임을 돌려 달라는 요구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운영자 입장에서는 이만저만 난처하지 않았겠다. 그러니 아예 못을 박았다.
운송약관이 한두 가지 아니련만, 두 나라 모두 굳이 이 조항만 승차권 전면의 같은 위치에 적어 넣은 까닭은 차치하고, '도중에 내리면 앞의 남은 거리(의 운임)는 무효'여서 환불하지 않겠다는 계약일진대, 알고 나니 오랜 궁금증에서 풀려나 후련한 기분과 함께 어떤 깨달음이 뒤통수를 쳤다. 어디 열차만 그러겠는가. 사람의 생애가 마찬가지여서, 중도작파는 무엇도 손에 남지 않는 가장 기운 빠지는 일. 어디든 무엇이든 나서면 끝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삼국유사'에도 그런 사람이 하나 나온다. 신라의 승려 의상(義湘)이다. 중국까지 가서 그 어렵다던 화엄의 진수를 깨치고, 정작 제 나라 경주로 돌아온 다음, 관음보살의 진신이 강원도 해변 굴 안에 계시다는 말을 들었다. 의상이 바로 이 관음보살을 만나는 이야기가 전도무효와 아주 반대다.
의상은 한달음에 달려가 바닷가에서 7일 동안 재계(齋戒)하였다. 그러자 반응이 나타났다. 관음보살을 모시는 종이 의상을 굴 안으로 이끌어 들여 예를 갖추고, 수정으로 된 염주를 내주었다. 의상이 머리 숙여 받고 물러나는데, 이번에는 동해용이 여의보주를 바친다. 의상으로서는 자못 흥분할 만했다.
그러나 의상이 목표한 바는 염주며 여의주가 아니었다. 관음보살을 만나는 것이었다. 화엄의 본산에서 스승의 뒤를 이으라는 영예까지 얻은 의상이었건만, 그런 중국에서도 관음 친견의 기회는 얻지 못한 터였다. 깨달음의 보증 같이 여기는 친견이 지금 눈앞에 와 있는데, 선물 두 가지 받고서 물러설 수 없었다. 의상은 다시 7일 동안 재를 올렸다. 끝까지 가서 이루겠다는 굳은 의지, 그것이 의상의 본디 자세이다.
원효와 함께한 입당구법(入唐求法) 여행에 나오는 저 유명한 해골바가지 이야기는 중국의 '고승전'에 실려 있다. 첫 번째 시도에서 고구려를 지나다 포로가 되었고, 두 번째 시도에서 해골바가지에 괸 물을 마시고, 동행하던 원효는 깨달았다며 돌아섰는데, 그래도 공부는 공부라며 중도하차하지 않은 의상이었다. '고승전'의 필자는 그것을 고정무퇴(孤征無退)라 적었다. '홀로 나아가며 물러서지 않는다'는 이 말 속에 전도무효 없는 의상의 모습이 있다.
두 번째 7일간의 재가 끝나자 드디어 관음보살이 나타났다. "앉아있는 곳 위의 산 정상에 대나무 두 그루가 솟아있을 것인즉, 그곳에 절을 지어야 좋겠다." 이 말을 듣고 의상이 굴에서 나오는데, 과연 대나무가 땅에서 솟아 나와 있어, 금당을 짓고 불상을 만들어 모셨다. 지금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