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중국의 캐나다 총선 개입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안의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중국의 시도가 선거 결과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해 의미가 없다"고 했던 기존 입장을 철회한 것이다. 중국은 복수의 아프리카·중남미 국가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어, 이번 수사를 통해 캐나다 총선 개입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전 세계에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7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트뤼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캐나다 민주주의 절차에 대한 확신을 유지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며 "특히 2019·2021년 두 번의 총선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외국 정부가 어떻게 선거 개입을 시도했는지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중국의 총선 개입 의혹과 관련된 캐나다보안정보국(CSIS)의 일급비밀 문건이 현지 언론에 공개된 후, 트뤼도 총리의 첫 공식 발언이다.
이 사건 수사는 향후 임명될 독립 특별보고관의 지휘하에 진행된다. 트뤼도 총리는 "특별보고관이 수사 방향성과 범위를 권고하는 등 폭넓은 임무를 맡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CSIS 문건의 언론 유출 경위를 살펴보는 수준이 아니라, 중국의 캐나다 내정 간섭 의혹 전모를 규명하겠다는 뜻이다.
트뤼도 총리는 입법부와 행정 당국의 동시 대응도 주문했다. 같은 날 국회 안전보장위원회에 출석해 "(중국으로 추정되는) 외국의 선거개입 의혹에 관해 별도로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국가안전보장정보심사국에도 "캐나다 안보기관이 외국의 간섭 위협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면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중국의 캐나다 총선 개입 의혹은 현 총리 부친 이름으로 설립된 '피에르 엘리엇 트뤼도 재단'도 연루되면서 눈덩이처럼 커지는 분위기다. 지난 1일 캐나다 그로브앤드메일은 "현 총리가 자유당 소속으로 정권을 잡았던 2015년, 트뤼도 재단이 중국 사업가로부터 20만 캐나다달러(약 1억9,000만 원)를 기부받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트뤼도 총리한테까지 불똥이 튀자, 재단과 총리실은 "기부금 출처가 뒤늦게 확인돼 이듬해 전액 환불했고, 총리는 이를 알지 못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CSIS 문건에는 "중국이 캐나다 총선에서 여당인 자유당의 승리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특정 후보들을 집중 지원했다"고 적시돼 있다. 지원 방식으로는 △후원금 명목의 현금 제공 △중국 유학생 선거운동 투입 △여론 조작 및 정보 공작 등이 거론됐다.
중국 정부는 의혹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친강 중국 신임 외교부장은 지난 2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에서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교장관과 만나 "이번 의혹은 완전한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지금까지 다른 어떤 나라의 내정을 간섭한 적이 없다"고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