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술탄'에 맞설 도전자로 '튀르키예의 간디'가 나서게 됐다. 5월로 예정된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에서 이미 20년간 장기 집권해 온, 나아가 사실상의 종신 집권까지 꿈꾸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을 꺾기 위해 야권이 케말 클르츠다로울루 공화인민당(CHP) 대표를 단일 후보로 추대한 것이다.
7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과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 방송 등은 튀르키예 6자 야권연대가 반(反)에르도안의 구심점이 될 단독 후보로 제1야당인 CHP의 클르츠다로울루 대표를 전날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클르츠다로울루 CHP 대표는 "우리의 테이블은 평화의 테이블이다. 국민연합(야권)은 합의와 협의로 튀르키예를 다스릴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의원내각제'로 다시 헌법을 바꾸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3선 총리 시절인 2014년 당규로 인해 추가 집권 길이 막히자 당시만 해도 명예직이었던 대통령 자리에 올랐고, 2017년 '제왕적 대통령제' 개헌을 거쳐 이듬해 또다시 대통령직을 거머쥐었다.
이에 맞서게 될 클르츠다로울루 대표는 인도의 비폭력 저항 운동가인 마하트마 간디를 닮아 '간디 케말' '튀르키예의 간디'로 불리는 인물이다. 카리스마형 리더십을 지닌 에르도안 대통령과는 달리, 조용하고 합의를 중시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이슬람 소수 종파 알레비족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재무부 공무원, 대학교수 등을 지낸 경제학자 출신 정치인이다. 다만 '책벌레 관료' 스타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부족해 대선 승리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야권연합 내부에서도 나온다고 BBC와 가디언은 전했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은 에르도안 대통령을 끌어내릴 절호의 기회라는 게 야권 전반의 시각이다. 수년째 이어진 경제난은 물론, 지난달 초 대지진 참사까지 겹친 '이중고'를 겪는 튀르키예에서 에르도안 정권 심판론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진 이후 일각에서 제기된 '대선 연기설'을 일축하며 5월 14일 조기 대선을 강행하겠다고 공표한 상태다. 클르츠다로울루 대표의 소속 정당인 CHP는 우익 성향 정당과도 손을 잡는 등 대선 승리를 위해 기반을 다지고 있다.
물론 '정권 교체'를 장담하긴 힘들다. 우선 야권 단일 대오도 불안정하기만 하다. 우파 정당인 '좋은 당'(Good Party)이 그의 단일 후보 결정에 반대하며 야권연합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게 대표적이다. 곧바로 이를 철회하며 재합류하긴 했지만, 야권 내부의 응집력이 강하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 승리 경험만 12번 이상인 '선거의 황제' 에르도안 대통령을 무너뜨리는 건 만만치 않을 '도전'일 수밖에 없다. 이스탄불 소재 한 대학교의 정치학자인 엠레 에르도안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5월 대선의 주제는 상대 후보가 아니라, '에르도안에게 표를 줄지 말지'의 문제"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