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몸 모자이크 없이 '전시'···'나는 신이다' 선정성 논란

입력
2023.03.0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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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피해 묘사에 모자이크 없는 나체 장면 그대로
2차 피해 우려도 커 "보도 이후 파장도 고려했어야"
PD "실제 수위의 10분의 1…불편함은 이해"


한국 사이비 종교의 실체를 파헤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신이 배신한 사람들'을 둘러싼 선정성 시비가 이어지고 있다. 사이비 종교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 불가피한 연출이었다는게 제작진의 설명이지만 피해 상황을 지나치게 세세하게 묘사하는 등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폭로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보도 이후 피해자들이 겪을 트라우마 등을 제작진이 더욱 신중히 고려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논란이 되는 대목은 시리즈 1~3회에 걸쳐 나오는 JMS(기독교복음선교회) 총재 정명석의 성범죄 혐의를 다룬 부분이다. 피해자가 직접 녹음, 성폭행 피해를 폭로하는 대목에서는 정명석의 음성이 고스란히 나오고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행 피해 장면이 지나치게 세세하게 재연되기도 한다. 정명석에게 세뇌돼 나체 상태로 사진이나 영상을 찍은 여성 신도들의 모습이 모자이크 처리 없이 반복적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피해자들이 젊고 키가 큰 여성이었다는 점도 지나치게 강조돼 그려진다. 제작진은 정명석의 범죄 혐의를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하지만, 피해자를 대상화하고 성폭행 피해를 포르노처럼 '전시'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적지 않다.

온라인에서도 이런 묘사에 대해 "불편해 여러 번 시청을 멈춰야 했다"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재연장면이 너무 포르노적이고,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평소 지상파와 수위가 전혀 달라서 마음을 먹고 시청해야 한다"는 등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연출을 맡은 MBC의 조성현 PD는 7일 오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저희 팀도 촬영을 갔다 오면 일주일 동안 앓아눕기도 했을 정도라서 보기 불편하신 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이해를 구했다. 오히려 실제 수위의 10% 밖에 다루지 못했다고도 했다. 지상파보다 표현 수위가 자유로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였음에도 다 담지 못할 정도로 현실의 피해가 더 끔찍했다는 항변이다.

시리즈 초반부에 '본 영상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장면을 포함한 사실적인 성적 학대 묘사가 있으며, 이는 일부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경고 문구가 나온다. 또한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증언하고, 사실적 묘사를 허락해 줬다는 안내도 이어진다. 종교 지도자에 의한 성착취 피해는 피해자가 피해 상황에 빠져 들어가는, 그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연출이었다는게 제작진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보도 이후 지속될 수 있는 피해에 대해서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했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연구본부 부연구위원은 "성폭력 피해는 피해자가 어떤 말을 했는지 만큼이나 전체 사건이 다뤄지는 방식이 중요하다"면서 "어떤 맥락에서 어떤 묘사를 담은 장면이 쓰이는지에 따라 사회적으로 2차 가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하게 피해자와 논의를 거쳐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도 이후 피해자가 겪을 추가 피해를 막을 조치도 긴요하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는 "피해 생존자는 (촬영) 당시 매우 격앙되거나 간절하게 사건을 알리고 싶어 하기에 촬영 등 모든 조건에 동의하지만 이후 보도로 고통을 다시 경험하는 경우도 생긴다"면서 "피해를 정확하게 알릴 필요는 있지만, 향후 지속적으로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우려가 있는 장면인지, 피해자가 증언자이자 생존자로서의 모습을 두루 보여주고 있는지를 제작진은 반드시 고려해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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