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열성 지지층의 전투력이 당을 파괴할 지경이다. 지난달 27일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이탈표 사태 후 ‘이낙연 전 대표 제명’ ‘체포동의안 의원 명단 공개’ 당원 청원을 제기해 약 7만 명, 4만여 명이 동의했다. 그 반발로 ‘이 대표 사퇴·제명’ 청원도 맞붙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포함해 ‘수박 7적(敵)’ 포스터를 유포하는가 하면 의원들에게 체포동의안 가부를 밝히라고 문자와 댓글로 압박했다. 진보세력이 조롱하던 ‘태극기 부대’와 다를 게 뭐냐고 할 만하다.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할 이들은 빗나간 팬덤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민주당 의원들이다. 안민석 의원은 2일 KBS 라디오에서 “이 대표 한 분이 자제해 달라고 분노가 멈춰지면 공산당 아니냐”며 지지자 분노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지만, 전날 “조직적 공모에 가담한 핵심적 의원들이 신속하게 해명하라”고 타깃을 지적한 건 자신이었다. 김용민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당원과 지지자들이 공천하는 시스템을 강화해 그분들(체포동의안에 찬성한 비명계)을 심판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둬야 한다”고 응징을 주장했다. 친명계는 이 대표 거취를 당원 투표로 정하자는데, 이런 비겁한 주장은 집어치우기 바란다. 민주당은 필요한 결단을 회피하면서 당원에게 결정을 떠넘겨 위성정당 설립, 서울·부산시장 후보 무공천 번복 같은 부끄러운 역사를 남겼다.
이 대표의 위기를 보는 국민 다수의 시각은 ‘수사는 과하지만 이 대표가 결백한지는 따져볼 문제’ 정도일 것이다. 이런 민심이 이탈표에 반영됐다. 그러나 이 대표는 위기를 돌파하는 리더십을 전혀 보이지 못하고 있다. 체포동의안 투표 후 이탈표를 무겁게 보고 거취를 정리하거나 획기적 수습책을 내놓는 그런 결단은 없었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이 말한 것처럼 투표 직후 의총을 열어 ‘나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 그러나 당은 수습해 놓고 보자’고 선언하는 그런 일도 하지 않았다. 뒤늦게 지지자들에게 내부 공격 자제를 당부했을 뿐인데 “(명단에 오른) 5명 중 4명이 그랬다고 해도”라는 대목에 이르면 이게 자제하라는 당부인지도 종잡을 수 없다. 자발적으로 영장심사를 받으란 제언이 진작 있었으나 무시한 것부터 시작해 이 대표는 줄곧 살고자 함으로써 죽는 길을 택하고 있다.
민주당도, 이 대표도, 팬덤에 기대 살아나긴 어렵다. 체포동의안 투표 이후 사흘간 당원은 1만4,000명이나 늘었지만 당 지지율은 크게 떨어졌다. 민주당이 핵심 지지층만으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은 지난해 민주당 새로고침위원회가 진단한 바다. 일부 의원들은 충성 지지층에 기대 자신을 구제하겠지만 중도층을 잃은 당의 대가는 클 것이다. 위기의식이 커질수록 이 대표를 흔드는 목소리도 고조될 것이다.
30여 이탈표는 그런 점에서 오히려 희망이다.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이 나경원 전 의원 불출마 압박 성명서를 낸 것에 비하면 그래도 민주당에 옴부즈맨과 이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체포동의안 가결이 필요하다고 의총에서 토론할 용기는 없었던, 파리한 희망이다. 3당 합당에 혼자 손을 번쩍 들고 “이의 있습니다”를 외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결기 하나 없다. 정치 생명을 걸고 소신을 택했던 노무현의 결단이 169명 의원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필요한 시점이다.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은 6일 청년 당원들과 기자회견을 열어 “이 대표가 결단하라”며 당직자 재편, 선거제 개편 등 쇄신을 촉구했다. 당대표와 의원들이야말로 이런 고민을 하고 치열하게 토론해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