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파도와 싸우는 채석강 갈매기들

입력
2023.03.0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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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 절벽과 해식동굴, 그리고 황홀한 낙조로 이름난 전북 부안군 채석강에 이른 봄이 찾아왔다. 지난 주말 ‘만물이 소생한다’는 경칩을 앞두고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차가웠지만, 상큼한 꽃향기와 비릿한 바다향이 뒤섞이며 온몸을 휘감았다. 이곳에 서있는 것만으로 그동안 마스크로 막혔던 답답한 가슴이 한순간에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채석강이란 이름은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중국의 채석강에서 유래했다. 조금 생뚱맞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니 나름 고개가 끄덕여진다. 중국의 채석강을 본 적은 없지만 물결 문양의 바닥과 갯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니 배 위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이태백이 된 듯 정신이 아득하고 몽롱해진다.

채석강을 둘러보다 바로 옆 격포해수욕장 모래 위에 옹기종기 모인 갈매기 떼에 눈길이 갔다. 이곳 갈매기들은 원래 관광객들이 주는 새우과자를 먹기 위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몰려든다. 그런데 이날은 거센 바람과 세찬 파도가 몰아친 탓인지 과자를 주는 사람이 없었다. 잠시 후 허기를 느낀 갈매기 몇 마리가 어두운 절벽으로 날아올랐고 거친 파도가 부서지는 바닷속으로 먹이를 찾기 위해 곤두박질쳤다. 그렇게 한참 동안 갈매기들은 타오르는 투지로 파도와 싸웠고,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온몸에서 힘이 솟는 것 같았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새로운 열정이 솟아났다.


왕태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