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 번호판 보증금 3000만 원 떼였다"... 지입제 피해 실상

입력
2023.03.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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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피해 사례 253건 접수
현장 조사 후 경찰 등 수사의뢰

#1. 화물차주 A씨는 운송사업자로부터 영업용 번호판을 받기 위해 보증금 3,000만 원을 냈다. 계약이 끝나고 A씨가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하자 사업자는 "그런 돈은 받은 적 없다"고 발뺌했다.

#2. 화물차주 B씨는 "일을 시작할 때 운송사 대표가 한 달에 1,000만 원 이상 벌 거라며 번호판 사용료로 800만 원을 받아갔다"고 전했다. 이후 대표는 지입료 명목으로 매달 50만 원을 추가로 떼어갔다. 대표의 말과 달리 그의 실제 매출액은 월 300만 원 수준. B씨는 "차 할부금, 기름값을 빼니 적자가 크고, 빚만 늘어 번호판 사용료를 받지도 못한 채 회사를 옮겼다"고 토로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20일부터 화물차주를 대상으로 지입제 피해 사례를 접수한 결과, 3일까지 총 253건이 신고됐다고 6일 밝혔다. 하루 평균 21건꼴이다. 피해 신고는 17일까지 받는다.

지입제란 화물차주가 운송사업자 명의로 번호판과 차량을 등록한 뒤 회사로부터 일감을 받고 보수를 지급받는 제도다. 현행법상 운송사업자만 화물차를 영업 운행할 수 있고, 번호판 공급도 제한된 탓에 대다수 차주는 운송사업자와 계약해 번호판을 받고 일한다.

문제는 번호판을 빌미로 벌어지는 운송사업자의 '갑질'이다. 정부가 접수한 피해 사례 중 운송사업자가 번호판 사용료 등으로 돈을 더 받거나 돌려주지 않은 경우가 111건(44%)으로 가장 많았다. 차주가 차량을 교체할 때 운송사업자가 이를 동의하는 대가로 '도장값'을 요구하는 사례도 16건(6%)으로 집계됐다.

운송사업자 대표가 번호판 사용료 등 수천만 원을 세금계산서 없이 자녀 계좌로 송금받은 사례도 드러났다. 또 차주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자 차량 번호판을 오려 가거나 빼앗아 간 사례도 신고됐다. 국토부는 지방자치단체와 현장조사반을 꾸려 피해 사실을 확인한 뒤 경찰청, 국세청 등 관련 기관에 수사 또는 조사를 의뢰할 방침이다.

차주에게 일감을 주지 않으면서 번호판 임대료만 받는 '지입전문회사'도 전국에 4,00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운송사업자의 약 30%를 차지한다. 국토부는 지입전문회사를 없애기 위해 회사에 등록된 지입차주에게 개인운송사업을 허가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지입제 폐단을 막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은 운송사 명의로 화물차량을 등록해야 하지만, 차량 실소유자인 지입차주 명의로 등록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본다. 번호판 사용료 등 차주에게 부당하게 돈을 요구하는 운송사업자를 차량 감차 등 행정 처분하고, 해당 계약 내용은 무효로 할 방침이다. 개정안은 지난달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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