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겨울 A씨는 충북 진천의 한 국도에서 운전하던 차량이 미끄러지면서 반대쪽에서 오던 차량과 충돌해 전치 8주의 사고를 당했다. A씨는 원인불명의 누수로 인한 결빙이 사고의 원인이라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때 당시의 날씨가 어땠는지 기상청의 관측 데이터로 확인해주는 '기상현상증명'이 활용됐다. 법원은 사고 당시 기온 기록을 근거로 상습누수지역인 이 도로의 배수시설을 정비하지 않은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과거의 기온·풍속 등을 기상청 데이터로 공식 확인해주는 기상현상증명 발급 건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기상현상증명은 주로 교통사고 등 분쟁 해결의 근거자료로 활용되는데, 기후위기로 기상현상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발급 수요가 늘고 있다.
5일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상현상증명 발급은 총 5만6,727건이었다. 2017년 2만5,934건이었던 발급 건수는 2019년 3만9,755건으로 늘었고, 2021년 6만518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2021년보다 지난해 발급 건수가 줄어든 건 단순 날씨 확인은 기상자료개방포털 등에서 검색하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라고 기상청은 설명했다.
기상현상증명은 지상관측과 항공관측, 기상특보, 지진 관측을 통한 자료를 제공한다. 지상관측의 경우 과거 특정지역의 기온, 강수량, 적설량, 습도, 풍향 및 풍속, 구름의 양 등 다양한 정보가 담긴다.
증명은 주로 교통사고 처리나 사건 수사, 재판 등에서 핵심 근거로 활용된다. 최근에는 장마로 인한 누수 등 피해에 대한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에도 입증자료로 쓰이고 있다. 농민들의 경우 땅이 얼고 녹는 시점을 파악하기 위해 지중온도를 발급받기도 한다.
특히 건설현장에서 기상현상증명은 흔히 쓰이는 서류다. 비나 이상 기상현상으로 인해 공사기간을 연장하거나, 건축물을 설계할 때도 활용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증명발급 목적 중 토목·건축이 40.1%로 가장 많았고, 법률·보험이 31.1%로 두 번째였다.
최근에는 기후위기로 지역별 기상현상의 편차가 심해지면서 기상증명의 필요성이 더 증가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폭염이 심했던 2016년엔 기상현상증명 발급 신청이 전년 대비 86%나 늘었다. 남부지방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던 2020년에도 증명 발급건수는 전년보다 74% 늘어났다. 지난해에도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리고 열대야가 이어진 3~4분기에 증명발급이 집중됐다.
기상청은 이에 전국 100개소에 불과했던 기상현상증명 대상 지점을 2021년부터 600개소로 확대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기존에는 전남 가거도 주민이 태풍피해를 입증하려면 인근 대표지점인 흑산도의 풍속값을 발급받았으나 앞으로는 가거도의 자료를 직접 받을 수 있다"며 "차후 기상청이 수집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의 관측자료까지 제공하는 등 보다 객관적인 기상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